“정동영 후보, 정말 신중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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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05면

박영선 의원 [신동연 기자]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저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시더라고요. ‘내 별명이 지둘려(기다려의 전라도 사투리)인데 정동영과 얘기하다 보면 진짜 지둘려는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라고.”

이래서 우린 그를 대통령 만들고 싶다 #대선 D-3 최측근 참모가 밝힌 후보의 진면목

대통합민주신당 박영선(47) 의원은 정동영 후보에 대해 “가끔은 답답할 정도로 신중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세간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평가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주변 사람들 얘기를 충분히 듣지 못했다 싶으면 아예 입을 안
열어요. 참모들 입장에선 속이 터지죠.”

박 의원은 1982년 MBC에 입사해 회사 선배였던 정 후보를 만난 뒤 지금까지 25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정계 입문 뒤에도 항상 정 후보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다. 그에게 정 후보를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

“참 착한 사람이죠. 주위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해요. 가끔은 저 사람이 이 무서운 정치판에서 어떻게 대선 후보까지 됐나 싶어요.”

그는 “정 후보가 불같이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이 한 번도 화를 안 낸다는 게 가능한 일이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딱 한 번 있긴 한데…”라며 잠시 망설였다. “5월 초 노무현 대통령이 정 후보를 공격하는 편지를 공개하자 반박하는 글을 쓰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말렸어요. 그랬더니 참을 만큼 참았다면서 처음으로 화를 내던데요. ‘나를 지역주의자로 모는데 이런 누명까지 쓰면서 정치하고 싶지 않다’고요.”

정계 입문 전의 정 후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박 의원은 “방송기자 시절 정 후보는 쉽고 간결한 표현력이 발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 후보가 라디오 뉴스를 진행할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선에 출마한다, 안 한다 말이 많던 때였어요. 뉴스 첫 멘트를 이렇게 하더군요. ‘오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두 바퀴 돌아 제자리에 왔습니다’. 다들 감탄했어요.”

박 의원의 요즘 별명은 ‘박지원 실장’이다. 그가 정 후보 선대위 지원실장을 맡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 별명엔 정 후보에 대한 박 의원의 무조건적 헌신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박지원 비서실장의 그것에 견줄 만하다는 뜻도 담겨 있다. 예상대로 박 의원은 정 후보의 단점에 대한 질문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해줄 때까지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아침잠이 좀 많아요. 기자 시절에도 지각 많이 하던 선배였죠. 큰 사건이 생기면 밤 꼴딱 새우고 방송하는 경우도 많은데 정 선배는 그 와중에도 구석에서 쪼그리고 자고 있더라고요. 또 자기 속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것도 정치인으로선 단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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