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삭막한 한강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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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강을 지날 때마다 나는 왠지 아쉬움을 느낀다.
아쉬움을 느끼다못해 속이 상한다.삭막한 강변 풍경 때문이다.
바라볼 것이 너무나 없다.어느 정도 한강을 살렸다고 하지만,강물만 맑아졌다고 다된 것은 아니다.강변에는 나무 한그루 없고 쉬어갈 찻집 하나 없다.유람선은 띄우면서 무엇을 유람하란 말인가.유람선을 타도 눈앞에 보이는 것은 공룡처럼 거대한 아파트들뿐 아름다운 것은 볼래도 없다.
푸른산을 뭉개고 골프장이 수없이 들어서며,논.밭을 없애고 빌딩이 들어서는 요즈음 강변을 살리자는 말이 그냥 꿈같은 소리일까.옛 선인들은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삶의 지혜로 생각했다.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치산치수는커녕 사람 다스리는 일조차 제대로하지 못하고 있다.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번 상상해 보자.만일 강변에 숲이 무성하다면,그 숲속에예쁜 찻집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강변 숲속,찻집에 앉아 맑은 강물을 바라보며 좋은 사람끼리 서로 따뜻한 얘기를 나눌수 있다면 마음도 저절로 맑아질 것이리라.
강물은 맑게 살리자면서 사람의 마음을 맑게 살리자는 데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같다.우선 살려야 될것은 마음이다.강물이 맑아져 물고기들이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맑아져 잘 살아야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환경을 살리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면 마음을 살리는 것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사람의 세가지 낙(樂)중의 하나가 하늘을 보고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치부를 한 졸부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삭막한 고수부지지만 강변에 앉으니 문득 소월의 아름다운 시(詩)한구절이 떠 오른다.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뒤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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