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BBK 잠재우기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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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300여억원에 해당하는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기로 한 것은 또 다른 승부수다.

이 후보 주변에선 지난봄 당 경선 때부터 "이 후보가 자기가 사는 집 한 채 남겨 놓고 모든 재산을 내놓을 것"이란 얘기가 나돌았다. 여러 사람이 이 후보에게 "재산과 권력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취지로 사회 헌납을 건의했다. 이 후보는 그럴 경우 "재산 문제는 나와 아내에게 맡겨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이 후보는 재산에 관한 한 부인인 김윤옥씨와 의사 일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두 사람이 진작부터 사회 헌납을 결심했으나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수 있어 시기와 방식은 이 후보가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왜 이 시기에 발표했을까.

우선 BBK 수사 발표 후에도 계속되는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BBK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분명하게 무혐의 결론을 내린 상황이다. 그런 만큼 "뭔가 켕기는 게 있어 내놓겠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풀 수 있는 시점이다. 이 후보 핵심 관계자들은 당초 재산 헌납의 발표 시기를 지난달 25일께가 가장 적합한 것으로 건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후보가 시기를 미뤘다. BBK의 국민적 오해를 푸는 게 선결 과제라는 판단이었다고 한다. 이후 극도의 보안 속에서 사회 헌납 문제가 진행됐다. 극적 효과를 위해서다.

지지층 결속 효과를 고려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후보 지지층엔 '지지는 하는데,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 후보의 재산 헌납 카드는 검찰의 무혐의 발표 후에도 계속되는 이런 불신감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당 관계자는 "현재 40% 이상 되는 이 후보 지지율이면 당선이 무난하다"며 "이런 지지자의 결집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말하자면 '집토끼' 결속 효과다.

하지만 이번 승부수가 얼마만큼 통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당장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이회창 무소속 후보 진영은 '매표(買票) 행위'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여론조사상 여전히 절반가량의 국민이 검찰의 수사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점도 부담이다. 그래서 이명박 후보의 '진정성'이 제대로 전달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 후보 주변에선 "이 후보가 진정성을 확인해 줄 추가 조치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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