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121년 코카콜라’의 탐욕·거짓을 벗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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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코카콜라게이트
윌리엄 레이몽 지음, 이희정 옮김, 랜덤하우스 279쪽, 1만2000원

 

코카콜라는 1886년 5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란타의 약제사 존 펨버튼에 의해 탄생했으니 올해로 만 121살인 셈이다.

남북전쟁의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당시 편두통 특효 강장제로 발명된 코카콜라는 오늘날 유엔 회원국 수보다 많은 전 세계 200여 나라에서 1초에 7000병(매일 13억 병) 판매되고 있다. 세계 인구가 마시는 음료수의 총량이 물과 커피·우유·차 등을 다 합쳐 매일 50억 병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지구 자체가 ‘코카콜라 행성’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코카콜라’는 ‘O. K’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영어단어로 통한다.

코카콜라의 이 같은 위용은 물론, 나이만큼의 오랜 세월과 열정적이고 탁월(?)한 경영자들의 노력 위에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나무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그늘도 짙은 법 아닌가. 코카콜라도 때로는 생존을 위해, 때로는 보다 나은 성공을 위해 온갖 모략과 협잡을 일삼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카콜라는 사업적 성취만큼이나 그동안의 과정을 ‘영광만 있는 신화’로 포장하는 능력을 발휘해왔다. 코카콜라와 관련해 지금까지 나온 책이나 방송프로들이 대부분 광고나 마케팅의 성공사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이 책은 다르다. 『코카콜라, 금지된 조사』란 책의 원제(原題)가 말해주듯이 코카콜라의 ‘영광’보다는 ‘그늘’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반적인 내용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중적 이미지나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 탐사전문 저널리스트답게 미국, 프랑스, 독일, 남미 등 코카콜라 성장의 주요 거점들을 넘나들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성공을 위해서라면 시간과 장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코카콜라의 비정한 모습을 가차 없이 폭로하고 있다.

저자는 초창기 코카콜라의 성공이 마약인 코카인 성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들춰내고, 회사가 이미지 관리를 위해 발명가와의 관계를 조작 내지 왜곡해온 과정을 낱낱이 추적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살아남기 위해 전장(戰場)을 시장으로 삼고, 나치 지원도 서슴지 않았던 행태하며 후발업체인 펩시콜라와의 이른바 ‘콜라전쟁’에서 저지른 파렴치한 로비들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 또 세계시장의 완전 장악을 위해 온도에 반응하는 자판기를 개발하려다 회장이 바뀐 비화와 전시 콜라 대용품으로 만든 환타가 치즈찌꺼기 등으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도 끄집어낸다.

이 책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코카콜라가 민주당 출신의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동원해 소련, 중국을 포함한 세계시장을 집어 삼키는 대목을 통해 자본의 권력화가 얼마나 음습하고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종 시니컬한 어조이지만 조목조목 따지면서도 속도감 있게 내용을 처리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반미이건 친미이건 한 번 볼만 하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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