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고려사.조선실록CD롬에-서울대 許成道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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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 대학교수의 10여년에 걸친 집념과 시민들이 한푼두푼 모은후원성금이 모아져 삼국사기(三國史記),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등 한문으로 된 역사서 3백26권이 컴퓨터 첨단전자매체인 CD롬에 수록됐다.
서울대 허성도(許成道.한어학)교수는 이달말 목판본 1천9백쪽,한자 2만1천자 분량의 삼국사기를 CD롬으로 펴낸뒤 나머지 역사자료들을 수록한 CD롬도 곧 출간한다.
許교수의 작업에 따라 며칠씩 도서관에 처박혀 한자자료를 뒤적여야 했던 국학연구자들은 이제 컴퓨터 단말기만 두드리면 몇분안에 필요한 정보를 마음대로 찾아볼수 있게돼 국학연구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許교수가 한자로 된 고전.역사서의 전산화 작업에 착수한 것은14년전인 80년.대만 유학을 마치고 막 교수생활을 시작한 許교수는 국학연구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컴퓨터에 자료들을 수록해 보다 많은 연구자들이 사료(史料)를 쉽게 접할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작업에 착수했다.
한자처리는 엄두도 못내는 8비트 애플 컴퓨터가 갓 보급된 시절이었지만 컴퓨터의 눈부신 발전으로 머지않아 한자처리도 가능할것이란 믿음에서였다.
정부.학술기관.문화재단등에 후원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한許교수는 국민기금을 모으기로 작정했고 82년말부터 후원자를 찾아다녔다.
許교수의 친구들은 『유구한 역사속에서 선조들이 기록한 유산을후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한자로 된 역사자료들을 컴퓨터에 수록해야 한다』는 끈질긴 설득에 매달 1만원씩 기금으로 내는 후원자가 됐다.
우연히 열차 옆자리에 앉았던 金모씨(46.자영업),許교수가 한때 봉직한 충남대앞 다방종업원이었던 변모씨(33.여),단골술집 주인등 5백30여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역사자료의 컴퓨터수록 작업에 기꺼이 동참해 매달 1천원에서 1만원 씩의 후원금을 꼬박꼬박 보냈다.
티끌모아 태산-.이런식으로 10여년간 모아진 기금이 모두 1억2천여만원.
모금작업이 계속되던 89년 3월 처리속도와 용량이 커진 386컴퓨터가 나오자 許교수는 컴퓨터에 들어갈 한자자형을 그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는 안쓰이는 고어한자,옥편에도 없어 정확한 음을 알기 힘든 한자를 포함,모두 1만4천5백5자를 그려냈다.
매일밤 늦도록 모눈종이.컴퓨터 화면과 씨름을 하던 許교수는 작업덕분에 난시가 됐고 그동안 사용한 원고용지만 해도 몇트럭분에 이른다.
3년여만에 완성된 한자체계는 실용화를 위해 모두 한글과컴퓨터社에 무료 제공됐고 현재 아래아 한글 워드프로세서 2.1과 2.5에 쓰이는 한자가 모두 許교수의 작품이다.
許교수는 연구원3명과 함께 한국사사료 연구소를 설립했고 입력작업에 착수한지 5년여만에 삼국사기 56권.고려사 1백37권.
조선왕조실록 태조~세조까지중 워낙 방대한 세종대왕 부분을 제외한 1백29권등 모두 3백26권을 컴퓨터에 담았다 .
『이제 국학연구를 위한 대강의 토대는 준비된 셈입니다.하지만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한자로 된 우리의 역사자료들을 모두 컴퓨터에 담으려면 아직도 엄청난 자금과 시간,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조상들의 정신적 유산들을 좀더 쉽게 이용하고 이해할수 있게 만드는게 許교수의 꿈이다.
〈芮榮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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