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용(69·사진) 대림산업 명예회장은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승연 한화 회장과 이신효 여천NCC 부사장, 허원준 한화석유화학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고소인은 대림산업 유화부문의 한주희 대표로 돼 있다. 이번 주 초에는 대림 측의 이봉호 여천NCC 대표가 이 부사장을 같은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경영 주도권 다툼=고소 사태는 전남 여수 여천NCC 공동대표인 이신효 부사장이 한 경제신문과 한 7일자 인터뷰가 도화선이 됐다. 인터뷰에서 이 부사장은 “합작이 지속되기 힘들다면 어느 한 쪽이 지분을 정리하고 나가는 게 회사나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다. 대림산업이 보유 지분을 넘긴다면 한화가 인수할 의향이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대림 측은 즉각 반발했다. 지난해 대림산업 대표이사직을 끝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 명예회장은 12일 여천NCC 등기이사로 복귀했다. 이어 이날 김승연(55) 회장 등 한화 측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 명예회장은 “대림산업 임직원과 가족, 거래처가 깜짝 놀랐다. 주가도 떨어져 시가총액 1조원이 날아갔다”고 비난했다. 그는 “손해배상 소송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화 측은 “고소를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박했다. 김 회장이나 경영진이 여천NCC 문제에 어떠한 지시를 한 바 없다는 것이다. 이 부사장의 인터뷰는 해당 신문 가판에 실렸다가 언론사에서 기사내용이 사실과 다름을 인정하고 본판에서 삭제했다는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고소는 다분히 정략적·의도적”이라며 “문제는 합작계약과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은 데 있다”고 주장했다.
◆해묵은 갈등=여천NCC는 1999년 두 그룹 간 ‘자율 빅딜’로 탄생했다. 경기고 선후배인 이준용 명예회장과 김승연 회장이 합의해 대림산업과 한화석유화학이 50%씩 자본금을 댔다. 2000년대 이후 중국 특수로 지난해 매출이 출범 당시의 두 배인 4조4000억원에 달할 만큼 성공했다. 두 회사에 2003년부터 매년 각각 1000억원 이상의 배당금을 가져다 주는 효자가 됐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2001년 노조 파업 때 대림 측은 유화책을, 한화 측은 공권력 투입 등 강경책을 주장했다. 당시 이 명예회장은 김 회장 측을 자극하는 신문 광고를 내면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주요 보직을 절반씩 번갈아 하고 진급도 같은 숫자로 한다는 합의도 발목을 잡았다. 전체 직원의 70%가 넘는 대림 출신들이 반발한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대등 합병 자체가 잘못된 출발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장희(경영학) 동서대 교수는 “대등 합병일수록 사람·제품·경영 프로세스를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합병 후 통합(PMI)’ 과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