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어린이책] ‘엄마 같던 누나’ … 어린시절 아련한 추억 생각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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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큰누나 일순이
이은강 글, 이혜원 그림, 파랑새, 120쪽, 8000원

너나 할 것 없이 배고팠던 시절, 먹을 것도 마땅찮은데 아이들은 어찌 그리 많았는지. 열두 살 일순이는 동생 이순이, 삼식이, 사순이, 오식이의 ‘부모맞춤’이다. 동생들을 챙기는 마음 씀씀이도 그렇고 실제 집안의 기둥이기도 하다.

 “올망졸망 매달리는 아이들 때문에 휘청거리는 가지를 용케도 버티는 감나무와 있는 대로 몸을 벌려 동생들을 안고 업은 일순이의 모습이 내겐 너무도 비슷해 보였답니다.”

일순이네 마당 가운데의 감나무에서 그의 모습을 떠올리는 친구 미향의 얘기다.

 목수일을 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일순이는 바빠진다. 마음씨 곱고, 공부며 고무줄놀이며 못하는 게 없던 그가 품팔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림질이며 빨래 등 살림도 군소리 없이 해내며 병을 앓는 어머니까지 보살피던 일순이. 기침을 해대는 동생 사순이에게 구운 배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밤중에 배서리에 나서지만 까치가 쪼아먹은 배만 고를 정도로 속이 깊다.

 그런 일순이에게 시련이 줄줄이 닥친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뜬 후 기침으로 허약해진 동생 사순이도 잃는다. 일순이가 견뎌내기엔 너무 큰 아픔이었는지 입이 돌아간다. 그래도 일순이는 씩씩하다.

 “마루 끝에 걸터앉은 일순이는 앉은뱅이 경대 앞에다 바짝 얼굴을 비춰 보며 쉼 없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헛바람이 새는 걸 막으려고 한 손으로는 마비된 입술 끝을 꼭꼭 여미기도 하면서 목청껏 불렀습니다.”

 일그러진 입술과 마음을 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순이의 모습이다. 동생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희생하는 큰 마음, 엎어지고 넘어져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강한 마음을 가진 일순이는 결국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공장으로 일하러 떠난다. 동생들을 동네 어른들의 손에 남겨 둔 채.

 이야기는 친구 미향이가 일순이를 찾는 신문광고를 보고 삼십 년 전 일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내 친구, 우리 누나 이야기처럼 느껴져 어린이보다 오히려 어른들이 좋아할 듯하다. 물론 외둥이로 자라 자기가 왕자요, 공주인 줄로만 아는 어린이들이나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는 아이들에게도 약이 될 법한 이야기다. 진한 형제애와 남을 배려하는 마음, 또는 굳센 의지를 키워 줄 테니.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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