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강세막대한 무역흑자에 달러매각이 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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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東京=李錫九특파원]일본 엔화가치가 미국달러화에 대해 연일 오르더니 21일 마침내 2차대전후 최고치를 기록했다.21일 도쿄(東京)외환시장에서 엔화는 한때 달러당 96.55엔을 기록,지난 7월 뉴욕시장에서의 세계최고치(1달러당 96.
60엔)를 경신했다.
엔화가 급등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방대한 일본의 무역흑자때문이다.일본기업들이 연간 1천3백억달러이상의 무역흑자로 생긴 외화를 달러로 갖고 있기 보다는 이를 팔아 엔화로 바꾸려 하기 때문에 엔고(高)기 조가 계속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일본의 기관투자가들이 외화를 사들여 해외에 투자하는바람에 외환시장에서 달러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뤘다.80년부터89년까지 10년간 일본의 대외투자액을 나타내는 장기자본수지 유출액의 경우 83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의 경상수지흑자를 웃돌았다.
그러나 90년을 피크로 기관투자가들의 해외투자는 줄어들고 있다.수출산업으로부터 달러를 사들여 해외에 투자한 일본의 기관투자가들이 해외투자에서 손을 빼니 외환시장에서 달러수요가 대폭 감소,일거에 엔고 압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생명보험.은행등 기관투자가들은 거품(버블)경제 붕괴로 수십조엔에 이르는 불량채권을 안고 있어 투자 여력이 없다.또 엄청난일본기업들의 해외부동산투자가 거의 대부분 버블경제 붕괴로 인한자산디플레로 큰 손해를 봤다.그러니 기관투자가 들은 해외투자에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기관투자가가 달러를 사들이지 않으니 외환시장에서는「달러화 매각,엔화 사들이기」일변도로 거래가 진행돼 엔화값어치가 오를 수밖에 없다.
한편 무역불균형의 시정은 이론적으로 수량이나 가격(환율)조정이라는 두가지 수단밖에 없다.그런데 일본은 美-日포괄협의를 통한 무역불균형 시정책으로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일본의 수입수량목표설정을 한사코 거부했다.이는 바꿔 말해 무역 불균형 시정을전부 환율로 하라는 것을 의미한다.일본 노무라(野村)연구소 리차드쿠 주임연구원은『구매력평가를 기준으로 한 엔화의 대(對)달러환율은 달러당 1백16~1백20엔에 불과한데 엔화가 93년 2월이후 급등하는 것은 이같은 일본 의 정책 때문』이라고 밝혔다.이밖에 엔화를 팔아 달러를 사들여야 할 정도로 미국의 금리가 일본보다 높지 않다는 면도 엔고에 일조하고 있다.
이상은 엔화가 오르는 기본적인 원인이고 최근 엔화가 또 급등하는 것은 벤슨 美재무장관의 발언에서 비롯됐다.벤슨 장관은「엔高,달러 약세」추세에 대해『현재 시장에 개입할 계획이 없다.환율은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벤슨장관의 이 발언은 외환시장의 투기자금들로 하여금 안심하고 달러를 팔아 엔화를 사들이게 했다.더구나 미국의 인플레 우려로 채권시세가 급락하고 있는 가운데 벤슨장관의 이같은 발언이 돌출,불을 지피는 결과를 초래했다.따라서 미국외환당국이11월 중간선거후 인플레를 우려,금리를 올릴 때까지 달러화 약세는 계속될 것 같다고 일본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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