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1800P 밑으로 떨어지던 날 "주가 내려야 번다" … 펀드로 돈 더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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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환매라니요. 주가가 이렇게 떨어질수록 ‘추불’해야죠.”

22일 주가 하락으로 국내 펀드에 넣어둔 1000만원이 걱정돼 서울 여의도 미래에셋증권 객장을 찾았던 회사원 송모씨(45). 그는 중년 부인 두세 명이 순서를 기다리며 나누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주가가 떨어질 때 펀드에 들어가야 나중에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이럴수록 기존 펀드에 돈을 추가로 불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주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국내 주식형 펀드로는 여전히 돈이 몰리고 있다. 증시는 6일 연속 하락하며 코스피지수가 3개월 만에 1800대 아래로 밀렸지만 국내 주식형 펀드에는 이달 9일 수탁액 100조 돌파 1주일 만에 3조원 이상의 자금이 들어왔다. 주가가 65포인트 이상 폭락한 20일에도 3028억원의 자금이 국내 주식형 펀드에 몰렸다.

22일 코스피지수는 7.97포인트(0.44%) 내린 1799.02에 마감했다. 이로써 지수는 8월 24일(1791.33) 이후 3개월여 만에 다시 1700대로 미끄러졌다. 코스닥지수도 5.29포인트(0.73%) 떨어진 722.04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증시에선 연일 ‘셀 코리아’ 매도 공세를 펼치는 외국인 투자자에 맞서 주식을 사들였던 개인투자자들까지 주식 매도에 가세해 1321억원어치나 팔아 치우면서 주가가 맥없이 무너졌다. 주가가 6일 연속 하락하기는 2005년 4월 이후 2년7개월 만에 처음이다.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률이 함께 하락하면서 펀드에서 돈이 빠지는 환매(펀드런)가 일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국내 증시에선 요즘 이런 말이 안 통한다. 증시가 하락한 6일 동안 21일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로는 1조3078억원의 돈이 물밀듯 들어왔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별다른 투자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해외 펀드로만 쏠렸던 여유자금들이 중국 증시 급락으로 국내로의 ‘유턴형 머니 무브’가 이뤄지면서 펀드를 통한 장기 간접투자 마인드도 서서히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 펀드 등으로 하루 평균 2000억~3000억원대씩 몰렸던 자금이 이제 하루 평균 900억원까지 줄어들면서 방향을 바꿔 국내 주식형 펀드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부동산에서 금융으로 자산을 배분하려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도 펀드를 향한 개미들의 돌진을 부추기고 있다. 펀드 투자자가 늘면서 9월 말 현재 자산운용사의 수신잔액(269조5433억원)은 이미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268조9834억원)을 넘어섰다.

그동안 비싸게 샀다가 쌀 때 팔아서 손해를 봤던 투자자들이 그간의 ‘학습효과’로 최근의 주가 하락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로 보려는 것도 한몫한다. 여기에 고수익에 현혹된 몰빵·올인·묻지마 투자까지 가세하며 돈을 몰아오고 있다.

하나대투증권 손명철 펀드 애널리스트는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중소형주에 주로 투자해 온 직접투자자들과 달리 장기 간접투자에 초점을 맞춘 차세대 펀드 투자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개인투자자의 투자 패턴까지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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