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종군위안부 누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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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역사현장인 그곳에서 그분들 생각에 촬영 내내 눈물이 났다."

누드를 찍었다, 안 찍었다 소문만 무성하던 탤런트 이승연씨가 12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이 모델로 등장한 '종군위안부를 테마로 한 영상 프로젝트'에 대해 소감을 밝혔다. 그는 "그분(종군위안부)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말도 했다.

이 사업을 기획한 네티앙엔터테인먼트는 보도자료에서 "종군위안부라는 주제를 통해 여성의 성 상품화가 자행되는 현 세태를 고발하고 당시 고통받았던 종군위안부의 삶을 재연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진 아픈 영혼들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로 만들겠다"라고 설명했다. 과연 그런가. '종군위안부'와 '누드'라는 말이 도대체 어울리기나 하는가.

주최 측의 보도자료 앞머리엔 굵은 글씨로 '더 이상의 누드는 없다'라고 돼 있다. '종군위안부를 테마로 한 누드영상'이 최고의 누드라는 자화자찬이다. 이쯤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가 솟구친다. 더구나 누드 영상을 통해 '성 상품화가 자행되는 세태를 고발'하겠다니, 자가당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이 공동으로 낸 성명서도 "기자회견에서 배포된 보도자료는 화려한 미사여구로 그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으나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의 나열"이라고 지적했다.

아직 동영상이나 화보 전체가 공개되지는 않았기에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승연씨가 "다음달부터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영상물을 유료로 공개하고, 화보집도 낼 예정"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종군위안부 누드'를 팔아 돈을 벌겠다는 속셈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씨 측이 촬영한 곳은 태평양의 팔라우 공화국. 2차 세계대전 때 한국인 종군위안부들이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한 곳이다. 그 상처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어떻게 누드영상을 만들겠다는 발상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씨는 촬영장에서 정말로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을까.

우정훈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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