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풍경 간직한 안창마을 ‘화려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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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마을 담벽에 부착된 미술작품과 서예작품,달마도 그림 등을 시민들이 구경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1970년대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부산 안창마을이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구불구불한 산복도로가 굽이처럼 이어지고 마을 전체가 푸른색 지붕으로 뒤덮여 있는 마을 곳곳에 벽화와 조각 작품이 설치됐다. 부산의 옛 기억을 지닌 이곳이 ‘안창고 프로젝트’라는 공공미술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마을이 예술 공간=부산시 동구 범일6동 안창마을에서는 지난 16일 오후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예술작품으로 저소득층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문화관광부 지원 사업의 하나로 지난 6월부터 진행된 ‘안창고 프로젝트’가 마무리 된 것을 공식으로 알리는 행사였다. 이 프로젝트를 주관한 대안공간 ‘오픈스페이스 배’ 관계자와 작품 제작에 참여한 지역 대학생, 주민 등이 모였다.

“야! 정말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 같아!” ‘안창고 프로젝트’투어에 나선 행사 참가자들은 한 주택 벽면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한 아이가 새총을 쏘려고 하고 다른 아이는 벽에 숨어서 동태를 살피고 있다. 구헌주 작가가 스프레이(분무기)로 그린 그래피티는 ‘실제 상황’처럼 생생하다. 구 작가의 그래피티는 동구종합사회복지관 앞 놀이터에도 그려져 있다. 복지관 인근 옹벽에는 빨간색 오리들이 헤엄치는 조각이 설치됐다. 박은생 작가의 조각으로, 안창마을의 상징인 오리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또다른 벽면에 수박이 주렁주렁 열리고, 해바라기가 활짝 피었는가 하면, 어린 왕자가 달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꼬불꼬불한 골목길과 100여 가구 문패도 발랄한 아이디어로 재구성됐다. 마을의 빈집은 작가 창작공간으로 활용됐다. 밋밋했던 마을 풍경을 상큼하게 바꾸는데는 지역 미술가, 부산대 건축과 동아리, 동의대 미대생, 신라대 공예과 학생 등이 참여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또 ‘안창별곡’이라는 단편영화도 상영됐다. 안창마을과 이 마을과 유사한 분위기를 가진 달동네, 산복동네를 무대로 제작한 영화가 1시간 정도 상영됐다. 안창고 프로젝트 사업비 6000만원은 모두 문화관공부가 지원했다.

안창고 프로젝트를 주도한 ‘오픈스페이스 배’ 서상호 디렉터는 “지역 미술가, 대학생,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힘을 합쳐 안창마을을 예술공간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아래 사진은 동의대 미술과 학생들이 공동으로 그린 ‘달 이야기’벽화. [사진=송봉근 기자]

◆마을 역사·기억 담아=안창마을 동구종합사회복지관 앞 자투리 땅에 안창마을 역사를 담은 ‘안창고’도 설치됐다. 부산대 건축학부 학생들이 설계한 안창고 벽면에 그려진 사과, CD, 책 등 벽화가 눈길을 끈다. 심점환 작가의 작품으로 사과는 풍요를 상징하고 CD는 자료, 책은 역사를 상징한다.

안창고 안에는 안창마을의 모습을 담은 섬유작품과 사진이 설치돼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안창마을을 담은 영상작품, 다큐멘터리, 단편영화를 모니터로 볼 수 있다.
이욱상 작가의 ‘안창여지도’도 이 마을의 기억과 삶을 오롯이 담고 있다. 지도를 보면 안창마을의 구조와 가옥들이 그려져 있다. 지리적인 부분 외에 마을 사람들의 삶도 지도에 투영돼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세명의 할머니가 고스톱치는 장면, 술집에서 하소연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작가는 “안창마을에 보존된 삶과 풍경을 인문학적으로 담은 이야기 지도”라고 설명했다.

서상호 디렉터는 “안창고 프로젝트는 예술로 도시 속 소외된 지역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도시 공간의 역사와 기억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며 “부산의 옛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안창마을에서 좀 더 세부적인 공간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낼 여지가 많은 만큼 이 사업이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부산시와 구청 등 지자체의 관심과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진권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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