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무릎팍팍!! 강호동이 ‘도사’가 된 진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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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진실 공방이 정치판의 전유물은 아니다. 수요일 늦은 밤에 TV를 켜면 지루하지 않은 진실 공방전을 매주 즐길 수 있다. 진실을 이끌어내는 힘의 중심축은 천하장사 출신의 개그맨 강호동이다.

강호동은 ‘얼짱’ ‘몸짱’으로가 아니라 배짱으로 승부한다. 씨름판에서도 덩치와 무게로 도전한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기술로 승리했다. 강호동을 소리만 지르는 사람으로 여긴다면 시각을 약간 수정하길 권한다. 그는 소리 질러야 할 때와 소리 내지 말아야 할 때를 잘 아는 영리한 진행자다.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릎팍도사’는 예능의 진화과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프로그램이다. 한마디로 MC의 스케일과 PD의 디테일이 잘 버무려진 합작물이다. 통 큰 재료와 섬세한 요리사가 만나 오락 명품을 탄생시켰다.

오랜만에 식당에서 마주 앉아 보니 강호동은 정말로 맛있게 ‘싹싹’ 잘도 먹는다. 밥 한번 먹자고 오며 가며 ‘빈말’한 게 얼마만인가. 실례를 무릅쓰고 몸무게를 물으니 ‘수줍게’ 100㎏라고 고백한다. 어디 하나 몰리거나 쏠린 곳 없이 골고루 살(근육)이 퍼져 있으니 보기도 좋다. 친구들이 교실에서 ‘받아쓰기’ 할 때 모래판에서 이미 ‘짧은 글짓기’를 하던 그답게 몸과 마음의 균형발전이 삶의 중요한 목표인 듯 보인다.

인생은 세상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터득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도사는 그 해답을 알려줄까. 도사는 도를 닦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기도 하다. ‘무릎팍도사’ 역시 짧은 문답과 경청의 단계를 거친 후 의뢰인의 고민까지 거침없이 해결해 준다.

DJ DOC의 이하늘도 몇 주 전 불려 나왔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라며 다양성의 가치를 주장했던 ‘악동’이다. 예고편의 소개대로 ‘가끔은 사회면에 실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해맑은 순박한 미소의 주인공’답게 할머니 품에서 어렵게 자란 이야기, 비행(?)소년 시절의 ‘무용담’, 클럽 DJ 시절의 궁상 등을 영화처럼 소상히 털어놓았다. 그 어떤 성장소설보다 교육적이었다고 느낀 까닭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자신에 대해 고마워하는 모습이 시청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었기 때문이다.

감동은 진실의 창문을 통해 슬며시 들어온다. ‘무릎팍도사’의 곁에는 제2의 강호동을 노리는(꿈꾸는) 두 명의 2인자들, 바로 ‘건방진’ 유세윤과 ‘어눌한’ 올밴이 있다.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는 사실을 강호동도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 아닐까.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전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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