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混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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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국 신화를 보면 성경의 창세기와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아직 천지개벽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세상은 거대한 계란과 같이 생긴 암흑의 도가니였다고 한다.하늘과 땅이 아직 나눠지지않은 상태,그것이 곧 혼돈(混沌)이다.
또 머나먼 서방의 천산(天山)에 혼돈이라고 하는 신조(神鳥)가 살고 있었다.이놈은 커다란 주머니처럼 생겼는데 온통 불덩이같이 붉은 색을 띠고 있다.
6개의 다리에 4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전혀 없어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신이다.그래서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다.
하지만 눈과 귀는 매우 밝아 춤이나 음악만큼은 잘 알고 있다. 특히 남이 찾아오는 소리는 귀신같이 알아 맞추는데 고약하게도 덕을 갖춘 사람에게는 온갖 못된 짓을 다하면서도 포악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꼬리를 흔들면서 아부를 하며 친절하다.
혼돈이 천지가 개벽하기 전의 암흑덩어리든,신조든 간에 사리를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너무 어두우면 보이지 않아서 판단할 수 없고 이목구비가 없어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판단할 수 있다고 해도 신조처럼 선(善)과 악(惡)을혼동하게 된다.이처럼 혼돈은 혼동(混同)을 일으키므로 좋은 뜻은 아닌 것 같다.마치 신조의 모양이 좋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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