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씨 주장 100% 확인할 수밖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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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03면

이번 주 국민의 손에 공연 티켓이 한 장씩 주어진다. 공연의 이름은 ‘BBK 주가조작’ 사건. 주연은 미국에서 송환돼 오는 BBK 대표 김경준씨다. 김씨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에 따라 공연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수 있다. 복잡한 금융용어가 사건에 등장하지만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김씨가 주도한 주가 조작에 개입을 했는지 여부다.

BBK 김경준씨 조사 앞둔 검찰 분위기

총감독을 맡은 검찰로서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일 수밖에 없다. 일단 눈앞에 닥친 현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김씨의 신병을 넘겨받아 호송하는 과정에서 분란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것. 대검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지금으로선 수사보다 중요한 것이 호송”이라고 했다. 송환 도중 김씨의 폭로가 여과되지 않은 채로 터져 나와 파문을 일으킬 경우 검찰의 ‘폭로 방조’ 의혹이 정치 쟁점화할 수 있다. 김씨의 송환 날짜가 14일이냐, 17일이냐를 놓고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법무부가 비공개 송환 방침을 정한 것도 폭로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김대업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검찰의 철통 보안은 수사 과정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을 지휘하는 김홍일 3차장 검사는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으나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수사 상황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하고 있다.

수사팀장인 최재경 특수1부장 역시 “수사팀 전원이 서울중앙지검 10~11층의 제한된 공간에서 수사를 벌일 것”이라며 “수사가 본격화하면 저 자신도 가능한 대외 접촉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에 관한 언론 보도가 대선 후보의 지지율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바로 속도다. 대통령 후보 등록 개시일(11월 25일) 전까지 수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느냐다. 김홍일 차장검사가 “최대한 신속하고 철저하게 실체를 규명하겠다”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듯 검찰은 25일을 중간수사 발표 시한으로 잡고 있다. 임채진 총장 내정자도 1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같은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검찰은 기초 조사부터 마무리 짓고 김씨 송환 뒤에는 김씨 진술과 자료의 진위를 가리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검찰은 이 후보를 주가조작 혐의로 고발한 김종률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을 지난 9일 불러 조사한 데 이어 주말에도 고소인·고발인 조사를 계속했다. 앞서 지만원씨도 불러 조사했다. 지씨는 “이 후보가 처남인 김재정씨 등이 대주주인 ㈜다스의 지분 96%를 차명으로 갖고 있으면서도 공직자 재산 신고 때 누락했다”며 이 후보를 공직자윤리법 위반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문제는 시한을 맞추는 동시에 진상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느냐다. 수사결과 발표 후 김씨나 범여권에서 “검찰이 사건을 덮으려 했다”며 축소수사 의혹을 제기하면 검찰 조직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게 검찰 고위간부의 얘기다.

“검찰이 방향을 정해 놓고 수사를 벌일 성질의 사건이 아니에요. 그러다간 뒷감당이 안 돼요. 김씨가 제기하는 주장은 100% 확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 후보 측이 적극 협조하면 진상에 접근하는 발걸음이 빨라질 수 있지만 검찰 내부에선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검찰이 이 후보를 소환할 수도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검찰청사의 포토 라인에 서게 하는 자체가 후보 지지율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탓이다. 이 후보 측에선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따라서 서면 조사와 같은 간접 조사 방식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대신 특별수사팀은 BBK와 ㈜다스 등 회사와 관련자들의 돈 흐름을 추적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수사에는 두 개의 중요한 변수가 있다. 공교롭게 검찰 수뇌부 교체 시기와 맞물려 있다. 임채진 내정자의 임기가 25일 시작된다. 임 내정자와 총장 자리를 놓고 경합했던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이 교체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새 검찰 수뇌부가 이번 수사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된다.

일부에선 1997년 대선 때의 ‘DJ 비자금 수사 유보’를 떠올리며 “25일 전까지 수사를 마무리하기 힘들면 대선 이후로 미룰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 측 폭로로 시작된 것과 달리 이번 수사는 “이미 오래 전에 사건화돼 있는 등 성격이 다르다”는 게 현재까지 검찰의 입장이다.

각 후보의 지지율도 수사에 영향을 줄 것이다. 검찰은 특히 이 후보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지지율이 이번 주 어떤 변화를 보이느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법조계에선 “자칫하다가는 이회창 전 총재를 도와주는 꼴이 된다”며 수사 속도를 줄일 것이라는 감속론과 “이 전 총재의 출마로 오히려 부담이 줄었다”는 가속론이 엇갈린다.

이제 정치권은 물론 검찰도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 들어섰다. 그 속에서 누가 누구를 베고, 누가 베임을 당할지 점치기 어렵다. 그것이 ‘BBK 수사’ 공연의 묘미이자, 흥행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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