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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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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소녀들이 세상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정치 얘기로 핏대를 올리다가도 이 소녀들의 나긋나긋한 노래 앞에선 모두 경계를 허문다. 어깨를 살랑살랑 흔들며 ‘테테테테테 텔 미’ 후렴구를 따라 한다. 댄스곡 ‘텔 미’로 10대에서 30, 40대까지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원더걸스 얘기다. 춤을 흉내 내는 UCC 열풍도 한창이다. 월드컵 때 꼭짓점 댄스 열풍에 비견된다. 방송사 9시 뉴스, 신문 사회면도 장식했다.

‘텔 미’의 인기는 복고풍 기획의 승리다. 1980년대 팝을 리메이크했고 디스코풍 편곡·의상·댄스를 선보였다. 원더우먼을 패러디한 팀명부터가 향수를 자아낸다. 자연히 30~40대 성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음악 자체의 중독성은 말할 바 없다. 귀에 착 붙는 멜로디에 춤 동작이 맞아떨어져, 전주만 나오면 어깨가 절로 들썩여지는 유희적 음악이다.

소녀를 성적 대상화하는 롤리타 콤플렉스 논란도 나온다. 짧은 치마에 가슴을 내밀며 어깨를 흔드는 도입부 춤 동작은 다분히 성적 유혹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양지로 나온 대다수 아저씨팬의 열광에는, 소녀애 취향으로 몰아붙이기 힘든 구석이 있다. 속칭 ‘삼촌팬’으로 불리는 새로운 성인 팬덤의 등장이다.

삼촌팬뿐 아니라 요즘에는 누나팬·이모팬도 많다. 조카나 자식뻘 되는 어린 연예인들에게 열광하는 중년 여성팬을 총칭하는 말이다. 동방신기·빅뱅 등 아이돌 가수, 20대 꽃미남 배우들, 배용준 아역으로 유명한 중학생 탤런트 유승호 등이 누나팬·이모팬들을 이끌고 있다. 이모팬들은 팬클럽 활동에 적극적이며 안정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이돌의 성장을 꾸준히 후원하는 후견인 역할도 해준다.

이런 성인 팬덤은 아이돌 문화가 더 이상 10대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70~80년대 국내에 처음 등장한 팬 문화를 경험했던 당시 10대들이 중년이 되면서 가능해진 일이기도 하다. 팬 문화의 성숙과 “아이돌 스타에 대한 열광을 통해 젊음에 대한 욕구를 발산한다”는 긍정적 평이 나온다(서울대 곽금주 교수).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인이 아이들에게 매혹된다는 것이다. 성인들의 시선이 성인 아닌 미소년·미소녀에 꽂혀 있다는 것이다. 성인들 스스로가 어른임을 부정하고픈 것은 아닐까. 그저 예쁜 아이들에게 매혹돼 진저리 나는 어른 세상을 잊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하긴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차라리 귀여운 소녀들과 함께 ‘테테테테테 텔 미’ 외치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