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 4타 앞서다 18번 홀서 지뢰 밟은 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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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 등 해외 언론들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 선언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대선 구도가 급변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다. 보수 진영이 분열돼 그동안 독주해 온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LA 타임스는 부동의 1위를 달려온 이 후보의 처지를 "18번 홀에서 4타나 앞서며 승리를 코앞에 뒀던 골퍼가 지뢰를 밟은 격"이라고 묘사했다.

이 신문은 '장애물에 직면한 대선 선두 주자'란 제목의 기사에서 "몇 주 뒤로 다가온 대선에서 승리가 확실시됐던 이 후보는 BBK 사건의 주역 김경준씨의 귀국 소식에 이어 헤비급 도전자의 출마로 돌연 지뢰밭에 던져진 형국"이라고 보도했다. 또 "대선을 불과 40여 일 남겨 놓고 출마한 이 전 총재가 이 후보를 추월할 시간이 충분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보수 진영에 제2의 후보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판세가 급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이어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은 보수층 분열로 정동영 대통합신당 후보가 어부지리(당선)를 얻을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며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근소한 지지율 격차 때문에 국정 운영이 절름발이가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고 보도했다.

AP통신도 이 전 총재의 출마로 보수 성향 표심이 나눠질 것이라고 전망한 뒤 '이 전 총재의 출마는 좌파 정권의 집권 연장을 돕는 행위'라는 한국 내 비판론을 전했다. 통신은 "이 후보에 대한 보수층의 불만이 이 전 총재의 출마로 나타났으나 그가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매우 작다"는 장훈 중앙대 교수의 분석을 덧붙였다.

◆일본=마이니치(每日)신문은 "이 전 총재의 출마에 대한 기대는 이 후보의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의혹으로 인기가 급락할 가능성 때문"이라며 "이 전 총재에 대한 보수층의 지지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또 "이 전 총재의 출마로 보수 표가 갈라져 이 후보와 동반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어부지리를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동영 후보도 두 이 후보의 경합에 가려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질 우려가 있는 만큼 반드시 환영할 일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NHK방송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 박근혜 전 대표 측과의 알력 이후 이 후보에게 불만을 가진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이 전 총재를 지지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일 정부와 정치권은 공식적인 발언은 삼갔다. 하지만 이 전 총재 출마의 도덕적 명분보다는 인물 됨됨이와 당선 가능성에 큰 관심을 보였다. 내각부의 한 관료는 "다소 맥 빠진 느낌이었던 한국 대선이 막판에 큰 '볼 거리'를 제공했다"며 "인물 본위의 선택을 한다면 이 전 총재도 유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자민당의 한 중진의원은 "일본이 50대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서 71세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로 갔듯, 한국도 다시 안정감 있는 인물을 원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프랑스=AFP는 이 전 총재가 출마를 공식 선언해 대통령 선거를 40여 일 앞둔 시점에 선거판이 혼미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 전 총재를 대북 강경론자이며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근소한 차로 패배한 유력 후보였다고 소개하면서 이 전 총재의 출마로 이번 선거전에서 일찌감치 선두를 달렸던 한나라당 이 후보가 큰 타격을 받게 됐다고 전했다.

워싱턴.도쿄.파리=강찬호.김현기.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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