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정권 잡으면 끔찍" … 헌재로 간 노 대통령 발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노무현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의 공개변론이 1일 서울 가회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대통령 측 법률 대리인으로 나온 고영구·김선수 변호사(우측부터)가 심판에 앞서 변론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대통령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을 염두에 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노무현 대통령 측 고영구 변호사)

"현행법을 지키라는 국가기관에 대한 협조 요구에 불과하다. 기본권 침해가 될 수 없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 황도수 변호사)

노무현 대통령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이 1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노 대통령은 6월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끔찍하다'는 등의 발언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 중립의무 준수 요청을 받자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날 법정에서 노 대통령 측 고영구 변호사와 중앙선관위 측 황도수 변호사가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주심인 송두환 헌법재판관 등 9명의 재판관은 쟁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참고인으로는 대통령 측에서 정태호(경희대 법대) 교수, 선관위 측에서 노동일(경희대 법대) 교수가 참석했다. (다음은 법정 공방을 일문일답 식으로 정리한 것)

-대통령 발언이 전 국민에게 전해지는데, 개인적 발언이라고 볼 수 있나.

"대통령도 국민.정치인으로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 이번 헌법소원은 부득이하게 사법적 판단을 통해 질식된 정치를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 기관이 아닌 개인이자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정치 선진화를 위해서도 이 같은 자유는 인정돼야 한다."(고 변호사)

-현행법이 선거의 자유를 선언하면서도 제한이 많다. 선거운동의 자유를 강조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선거 중립의무 준수 요청은 대통령의 행위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이상 이 사실을 알려주고 법령 준수를 요청한 것이다. 선거 중립은 입법의 문제다. 국회에서 국민 수준이 성숙했다고 판단하면 법 개정을 하겠지만 현재의 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국회에서도 위헌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황 변호사)

-선관위는 국민의 준법의무를 확인한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현행 공직선거법은 국민을 성숙한 시민이 아닌 미숙아로 간주해 정치 관련 정보의 유통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9조 제1항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관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아 공무원의 금지된 행위가 무한정 확장될 수 있다."(정태호 교수.대통령 측)

-일부 정무직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의 예외가 되기도 하는데.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도 공직자로서의 선거 중립은 철저히 규제한다.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발언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이 공직이 부여한 영향력을 이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노동일 교수.선관위 측)

한편 대통령 비서실은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에 '왜 대통령은 헌법소원을 제기했나'라는 글을 올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정치 중립을 강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관리자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치인인 만큼 대통령에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것은 책임정치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김승현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