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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이명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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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결국 위기가 왔다. 50%가 넘는 지지율로 거침없는 대세론을 구가하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말이다. 위기는 안팎에서 밀려왔다. BBK 의혹의 주역 김경준씨가 곧 한국으로 송환된다고 하고 소문으로만 나도는 범여권의 ‘한 방’은 아직 까발려지지 않았다. 여기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무소속 출마설이 이 후보를 위협하고 있다.

 대선은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다. 뒤쫓는 입장에서는 후보 단일화나 네거티브 캠페인 등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뒤집기를 시도하게 돼 있다. 민주화 시대인 1987년 이후 네 번의 대선에서 특정 후보의 일방적 우세로 끝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 후보 진영은 위기 대비에 소홀했다.

  이 후보의 취약점은 두 가지였다. 그는 일찍부터 대통령의 꿈을 꾸면서 주변을 관리해 오지 않았고 가혹한 검증의 무대에 서지도 않았다. 그 대목은 범여권의 집중 공략 대상이다. 이 후보의 진짜 위기는 내부의 취약점을 방치한 데서 비롯됐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여론조사로 이겼을 뿐 ‘당심(黨心)’에서는 졌다. 그런데 경선 후 박근혜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데 소홀했다. ‘박근혜의 도움 없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대선 후 박근혜의 세력이 힘쓰는 것을 막고 당을 ‘독식(獨食)’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박근혜가 너무 커지는 바람에 끌어안고 가기 불안해서였을까. 지금 그 틈새를 이회창이 파고들고 있다.

 이명박에게 승리를 안겨준 ‘여론조사’가 이번에는 그를 겨냥하는 칼이 됐다. ‘무소속 이회창’의 지지율이 “10%대 후반”이라거나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보다 높게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지지율이 50%대 초중반에서 40%대 초반 내지 30%대 후반으로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이회창 지지자의 상당수가 한나라당 경선에서의 박근혜 지지자와 겹친다. 여기에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 같은 표 결집 현상이 더해진다면? 대선 결과는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이회창 측은 이명박이 낙마에 준하는 상황에 처할 경우 ‘대안(代案) 후보’도 기대하고 있으니 쉽게 포기할 것 같지도 않다.

 묘하게도 이명박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밖에 없다. 박근혜가 나서서 “이회창씨 출마는 정권교체의 열망을 저버리는 명분 없는 행위”라고 외친다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 범여권의 한 방도 박근혜의 지지가 확실한 방어막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흔쾌히 나설 분위기가 아니다.

 경선 뒤 두 사람이 만났지만 박근혜 측 반응은 ‘왜 만나자고 했는지 모르겠다’였다. “당 최고위원 자리를 주는 데 인색했고, 선대위를 발족하면서 우리 측 인사는 유명무실한 곳에 배치했다. 각개격파식 회유작업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여기에 이 후보 진영에서 박 전 대표 측을 향해 “반성해야 할 사람들”이라거나 “말만 ‘경선 승복’이지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구먼”이라며 비아냥댄 것이 불을 질렀다. 박 전 대표가 측근들에게 “꼭 살아남으라”고 당부하고 기자들에게 “경선에서 나를 도운 게 죄냐”고 하소연한 배경이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함께’하는 것이다. 경쟁자를 모조리 몰아내고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독재정권에서나 가능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로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외부의 위협에 대해서는 공동 대처했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걸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최근 끝난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도 견제와 균형의 리더십을 택했다. 이 게 ‘권력의 뒷거래’나 ‘지분 나눠 먹기’일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경쟁자 포용’이나 ‘대타협의 정치’가 되기도 한다.

 이 후보는 앞으로 10·26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에 참배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공을 박 전 대표에게 들여야 할지 모른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기도 쉽지 않게 됐다. 박 전 대표가 현재의 위기에 가세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파괴력이 더 커진다. 위기는 지금이 정점이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뺄셈의 정치는 그래서 위험하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