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펑펑 운 발레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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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녕하세요. 오늘 웬일이세요? 공연도 보러 오실 거죠."

26일 오전 서울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 누드 파문으로 '감봉 1개월' 징계를 당한 김주원(30)씨는 밝게 인사했다. 그러나 기자가 말을 건네려 하자 "인터뷰는 안 해요"라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31일부터 공연되는 '춘향&뮤자게트'라는 작품에 출연하는 김씨는 현재 막판 맹연습 중이다. 심경을 듣고 싶었지만 김씨는 끝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겉으론 애써 태연했지만 김씨의 속내는 편치 않은 듯싶다. 국립발레단 문병남 부예술감독은 이렇게 전했다. "어제 주원이가 오전에 인사위원회에 출석한 뒤 오후에 연습하다 갑자기 펑펑 울더라고요. 얼마나 가슴이 찡하던지. 외국에서 온 안무가는 자기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당황했죠. 그렇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도 난처하고…."

김씨의 누드 사진은 사실 보기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있다. 사진에서 김씨와 같이 등장한 남자 무용수는 춤을 추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 앞에서 김씨는 춤을 추거나 상체를 드러낸 채 무릎 위에 앉아 포즈를 취한다. 여성 육체를 향한 남성의 관음증적 시각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보수적인 견해가 반드시 옳지 않은 건 아니다. 그건 취향의 차이다.

그러나 여기에 '징계'라는 물리력이 동원되는 순간, 문제는 달라진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는 예술적 담론이 표현의 자유라는 사회적 이슈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소중한 것만큼 표현의 자유 역시 지켜져야 한다.

해외에서도 유명 무용수의 누드 사진은 논란이 되긴 했으나 징계를 받지는 않았다. 무용 칼럼니스트 장인주씨는 "실비 길렘이나 알렉산드라 페리 같은 세계적인 발레리나의 경우 대중 매체나 사진집을 통해 전신 누드를 공개했다. 그러나 소속 발레단에서 이를 문제 삼진 않았다"고 전했다.

국립발레단은 '사전 보고 불이행'을 징계 사유라고 주장하나 이는 핑계다. 만약 김씨가 미리 얘기하지 않고 평범한 사진을 찍었다면 이런 처벌을 내렸을까. 논란이 일어나 시끄러운 게 불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위대한 예술 작품엔 언제나 논란이 따라다녔다. 논란을 두려워해선 예술적 상상력은 꽃 피울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혀 예술적이지 못한 국립발레단의 행태는 비난 받을 수밖에 없다.

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