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의나!리모델링] 거절도 능력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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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혼부부가 부부싸움 끝에 병원을 찾았다. 싸움의 발단은 이러했다. 남편인 L씨가 결혼하고 나서도 옛 애인을 몰래 만나 왔던 것이 들통 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더 커진 것은 그 일을 대처하는 L씨의 태도 때문이었다. L씨는 당장은 관계를 끊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이후로도 질질 끌며 만나 온 것이었다. 결국 L씨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부부 갈등의 불씨를 키운 것이다.

 우유부단! 말 그대로 망설이느라 결단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사실 그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 우유부단함에서 자유로운 현대인은 없다. 가까운 사람의 부탁을 받을 때, 재테크 상품을 고를 때, 가전제품이나 옷을 살 때 등등. 우리는 늘 수많은 선택의 상황에서 수없이 결정을 머뭇거리거나 번복한다. 하다못해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더라도 우리는 수십 개의 맛 앞에서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골라먹는 재미가 또 누군가에게는 골라 먹어야 하는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럼, 이렇게 선택의 비교 범위가 무한정 넓어지고 있는 반면 선택의 능력은 향상된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갈수록 자율과 주관을 잃고 살아가기 쉽다.

 그래서일까? 우유부단한 문제를 고쳐 달라고 상담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자기 확신이 미약하다. 물론 그렇다고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유부단한 단일한 성격이 있다기보다 각자의 성격에 따라 우유부단의 대상과 양상이 다양하게 표현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유부단함의 가장 흔한 유형으로는 ‘완벽주의 유형’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흔히 후회도 의문도 없는 최상의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보수집에 허덕이다 끝없이 머뭇거리기 일쑤다. 둘째는 ‘갈등 회피 유형’이다. 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이거나 친구를 만들기보다는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거나 다른 사람과 갈등을 겪는 상황 앞에 서면 끝없이 우유부단해진다. 셋째는 ‘과잉의존 유형’이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지시와 대리판단에 의해 수동적으로 살아옴으로써 혼자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늘 어려움을 겪는다. 말 그대로 마마보이 같은 경우를 들 수 있다.

 L씨는 결과에 대한 잘못은 시인했지만 끝까지 자신의 의도만큼은 순수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물론 L씨의 마음에 상대를 배려하고자 하는 긍정적 의도가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우유부단함 때문에 치러야 할 피해를 보다 똑바로 볼 필요가 있었다. 그의 긍정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의 우유부단함으로 세 사람 모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 왔기 때문이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우유부단함 벗어나려면
■후회 없는 선택을 바라지 말라. 모든 선택은 후회가 따른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는 마음이 우유부단함을 만든다. 그렇기에 최상의 선택은 선택의 순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정한 선택을 최선의 결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유념하라.

■ 삶의 저울을 지녀라.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나누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삶의 원칙이자 목표다. 재테크를 하는 데 있어서도, 가정교육을 하는 데 있어서도,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만의 중요한 원칙을 정해 적어 보자.

■결정과 거절을 훈련하라. 결정하는 것도 능력이고 거절하는 것도 능력이다. 훈련을 통해서 향상되지 않는 능력이란 없다. 외부로 향해 있는 안테나를 내부로 돌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포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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