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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패러독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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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새장 속의 새에게 새장은 자유이면서 구속이다. 새장이 허용하는 공간 안에서는 마음껏 날 수 있지만 새장 밖의 더 큰 세상으로는 날아갈 수 없다. 새를 키우는 당신에게 새장은 꼭 필요한 것인가. 새가 새장 밖으로 도망갈 걱정을 하는 사람에게는 새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발상을 바꿔 새장이 없다면 새가 날아가 오히려 더 많은 새를 끌어올 것이라고 생각할 순 없을까.

덩샤오핑(鄧小平)은 국가의 부(富)가 국경 내에서의 활동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중국 최초의 지도자였다. 글로벌 경제의 잠재력에 일찍이 눈을 뜬 그는 1980년대 들어 시험적으로 일부 지역의 문호를 개방했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새장 속의 새 신세였다. 중앙정부의 관료주의적 통제 때문이었다.

개혁·개방 초기 경제특구에 진출한 해외 투자자들은 중앙정부를 상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의사결정권이 베이징에 집중돼 있던 탓에 지방에서 진행되는 모든 사업계획에 대해 일일이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전 총리였던 주룽지(朱鎔基)는 발상을 바꿨다. 새장을 없애면 더 많은 새가 몰려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 총리는 국영기업과 외국인 투자기업과 관련해 중앙 정부가 처리하던 업무를 대거 지방정부로 이관했다. 중국은 단일 국가에서 다수의 지역국가 연합체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지방의 시장(市長)과 성장(省長), 당 서기들은 현지 기업들의 성공을 위해 온갖 머리를 짜냈다. 스스로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해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뛰었다. 중국은 78년 이후 6500억 달러 이상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끌어들여 세계 최대의 해외 투자 유치국이 됐다. 새장을 없앰으로써 더 많은 새를 끌어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스타가 탄생했다.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재들이 차세대 리더 그룹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지난주 열린 중국 공산당 17차 전국대표대회(17대)를 계기로 대거 권력의 핵심에 진출했다. 후진타오(胡錦濤)의 뒤를 이어 2012년 차기 국가주석에 1순위로 예약된 시진핑(習近平) 상하이 당서기와 리커창(李克强) 랴오닝성 서기가 나란히 정치국 9인 상무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다롄(大連)시 서기와 랴오닝 성장을 역임한 보시라이(簿熙來) 상무위원도 25인의 정치국원 지위에 올랐다. 이들의 어깨에 중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중국은 이미 ‘없어서는 안 될’(indispensible) 나라가 됐다. 중국 지도자들이 내리는 결정은 세계의 안정과 불안정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 불안해지면 세계가 불안해진다. 중국의 문제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의 문제다. 세계가 중국 지도자들의 성공을 빌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갈 것인가. 낙관과 비관이 공존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17대는 희망을 주고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중국 공산당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집단지도체제를 확립했다. 보이지 않는 권력 투쟁은 물론 있었겠지만 뚜껑을 연 결과는 엘리트들의 발탁과 엘리트 간의 경쟁을 통한 집단지도체제였다. 세대 교체도 자연스러운 룰로 정착됐다. 권력의 향배에 관한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 또한 높아졌다.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정치적 안정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극심한 빈부 격차와 도농(都農) 격차 속에서 13억 인구의 민주주의가 가져올지 모르는 혼란과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엘리트 집단지도체제는 현 단계에서 중국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의 선택일 수 있다.

중국은 모순 덩어리다.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면서도 돈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용납되는 벌거벗은 자본주의가 판치고 있다. ‘차이나 패러독스’다. 그 모순 속에서 대중의 욕구와 불만이 분출하고 있다. 하루 평균 70여 건의 시위가 속출하고 있다. 개혁·개방의 속도를 높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생각하기 어렵다. 새장 밖의 자유를 맛본 새를 다시 새장에 가둘 순 없는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