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재조명>5.규제완화로 활로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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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①총체적 右傾化 ②무너지는 신화 ③흔들리는 종신고용제 ④기업-생존 몸부림 ●5규제완화로 활로(上) ⑥규제완화로 활로(下)『버스정류장을 10m 옮기는데 6개월이 걸린다.』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前일본총리는 지난 88년 여름 구마모토(熊本)縣지사시절의 경험담을 이같이 털어놨다.
縣立극장현관 정면에 있는 버스정류장이 경관을 해쳐 옮기려 했더니 운수성의 허가가 필요했고 6개월이나 걸려 겨우 허가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캔맥주가 뉴욕에서는 3백40㎖가 78엔인데 일본에서는 3백50㎖가 메이커 희망소매가격이 2백25엔,할인판매점 가격이 1백70엔이다.
일본은 미국보다 주세가 약8배,맥주원료인 麥芽가 약6배,전기요금이 약 3배,용수가 약6배,알루미늄캔과 연료가 약2배나 비싸기 때문이다.또 복잡한 유통구조로 도.소매 마진이 25%나 된다. 일본 경제기획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현재 東京의 물가수준은 뉴욕에 비해 1.48배나 된다.쌀이 2.1배,우유가 2.5배,맥주가 2.45배,브래지어가 1.97배,루즈가 5.33배나 된다.복잡한 유통구조와 이를 보호해주는 각 종 행정규제가 수입을 막고 신규참여를 억제하고 있는 때문이다.
日총무청 조사에 나타난 허가.인가등 행정규제 건수는 93년 5월말 현재 1만1천4백2건이다.85년도보다 1천3백48건이 늘어난 것이다.
행정규제는 허가.인가.면허.승인.지정.승낙.인정.확인.증명.
인증.시험.검사.검정.등록.심사.계출.보고.교부.신청등 헤아릴수 없는 각종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일본 국민총생산(GNP)의 40%가 이같은 규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 산되고 있다.
인가건수를 각 부서별로 보면 운수성이 1천9백66건으로 가장많고 통산성(1천9백15건),농림수산성(1천3백57건),대장성(1천2백36건),후생성(1천1백70건)順으로 뒤를 잇고 있다.이들 5개 부서가 전체 인허가의 약 7할을 차지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 부서가 속한 상임위원회는 의원들에게 인기가 높다.
업자들의 편의를 봐주면 정치자금이 굴러 들어오기 때문이다.이는自民黨 정권아래에서 政.官.財유착과 族의원(특정 상임위에서 오래 활동,그 분야의 官.財界에 발이 넓은 의원)을 낳아 정치부패의 원인이 됐다.
일본의 행정규제는 明治시대 이래의 꿈인「西歐 따라잡기」에서 비롯됐다.
「殖産興業」즉 근대공업육성이란 지상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은 지난 41년부터 관료주도형 업계협조체제를 구축,근대화 즉 규격대량생산에 매진했다.
이 정책은 맥아더 점령군에 의해 일시 배제됐다가 50년부터 급속히 부활,60년대에 강화됐다.일본공업규격JIS마크와 농산물의 JAS마크등이 좋은 예다.각종 시설기준은 안전성과 공해방지를 이유로 점점 강화됐다.
이처럼 관료가 주도해 만든 규격기준의 엄격한 적용은 수입을 막는 비관세장벽으로,기업의 신규참여를 가로막는 생산자보호막으로작용하고 있다.따라서 미국등은 아직도 41년 제국주의 시절에 만들어진 일본의 보호무역체제와 싸우고 있는 셈이 다.
西歐 따라잡기 단계에서는 특정한 목표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불필요한 경쟁을 배제하기 위해 개인과기업에 규제라는 차단막을 드리울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이제 조선.철강뿐만 아니라 자동차.가전등 첨단산업에 이르기 까지 아시아신흥공업국이 진출하고 있다.일본 산업계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따라잡기」가 아니라「원초기술개발」이다.
이를 위해선 자유로운 발상과 행동이 필요하다.그대로 뒀다가는대변혁기를 맞은 일본경제의 장래라는 싹이 규제에 의해 꺾여 버릴 우려가 있다.
60년대 혼다(本田)가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동차 사업에진출,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성장한 것은 규제라는 장벽을 뚫었기때문에 가능했다.규제는 안전성을 확보하고 환경을 보전한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소비자가 무시되고 비효율성을 낳는다.
히토쓰바시(一橋)大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巖)교수 試算에 따르면 비규제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연간 7백40만엔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데 비해 전력.가스.운수.건설.농업등 규제산업노동자는 6백35만엔에 불과하다.
일본이 무역마찰해소와 엔高를 극복,다시 번영을 누리기 위해 규제완화로 활로를 뚫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은 것은 이때문이다.
[東京=李錫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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