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 크게 다쳐 대수술 내 춤은 그때 부활했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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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럽과 남미가 축구의 양대산맥이라면, 무용은 유럽과 미국이 전세계 흐름을 주도해 오곤 했다. 그런데 최근 현대 무용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지역이 있으니 바로 이스라엘이다. 세계 유수의 공연축제엘 가보면 이스라엘 무용단의 활약상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변방에 머물던 이스라엘이 세계 무대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 구체적으로 오하드 나하린(55·사진)이란 도발적인 안무가가 등장하면서다.

 오하드 나하린이 이끄는 바체바 무용단의 신작 ‘Three’가 국내 무대에 오른다. 24일과 25일 이틀간 서울 LG아트센터에서다. 2002년 ‘데카당스’란 작품으로 국내 첫 선을 보인지 5년만이다.

이번 작품은 제목처럼 3부작으로 구성돼 있다. 1부는 바흐의 변주곡에 맞춰 수학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2부는 여성 무용수만으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엉뚱함을 선사한다면, 3부는 반복된 부조화속에 묘한 통일감을 담아낸다.

 그의 작품 스타일은 한마디로 ‘강렬’하다. 또한 쉽다. 특별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무용수들의 터질듯한 에너지를 느끼는 것 만으로 가슴이 꽉 차 온다. 세련됐으되 정열적이고, 단순한 듯 보이지만 치밀한 공식이 숨겨져 있곤 한다.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이 아닌,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딱 맞춘 듯한 엇박자의 리듬, 펑크록에 가까운 비트감 등 오하드 나하린의 작품에선 낯선 음악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LG아트센터 제공]

그는 또한 관객을 툭하면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단순한 이벤트성으로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수준이 아니다. “제도 교육을 받은 무용수만이 춤을 출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반인들의 본능적인 몸짓도 훌륭한 무용이 될 수 있다”는 게 나하린의 기본적인 무용 철학이다.

“와서 봐라. 무용 전문가일 필요도 없고 심지어 그간 무용을 한번도 안 본 사람이라도 좋다”고 그는 자신있게 말하곤 한다.

 나하드의 독특한 무용관은 그의 굴곡있는 무용 인생에서 비롯한다. 그는 22살이란 늦은 나이에 무용계에 입문한다. 무용을 시작한 지 1년만에 ‘미국 현대무용의 대모’ 마사 그레이엄에게 발탁돼, 뉴욕으로 건너갔다. 뉴욕 줄리어드 학교와 아메리칸 발레 스쿨에서 수업을 받았고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에 입단해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80년대 들어 안무가로도 활동 범위를 넓힌 그는 ‘오하드 나하린 댄스 컴퍼니’를 창립, 세계 각지를 누비고 다녔다.

 바로 이 즈음, 그는 무용 인생에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치명적인 허리 부상을 당해 척추 수술까지 받게 된 것. 무용은 커녕 움직이고 숨쉬는 것 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매일 통증과 싸우면서 그는 자신만의 움직임에 눈을 뜬다. 즉 신체의 과다한 동작은 최소화하되, 근육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신체 수련법을 터득하게 된다. ‘가가(gaga)’라고 이름 붙인 이 수련법을 통해 그는 자신의 신체가 가진 약점을 파악하고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서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차츰 체화시켜 간다. 그리고 자신의 무용단에도 이를 적용해 새로운 무용 언어를 창출하게 된다.
 그는 또 무용단 연습실에 거울을 가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본능에 맡기라는 뜻이다. “움직임 자체를 즐겨라. 그러면 관객도 이를 느끼게 된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래서 그의 무용은 흔히 즉흥적으로 보이지만 고도의 테크닉이 자유롭게 결합된 재즈 잼 세션에 비유되곤 한다. 장인주 무용 칼럼니스트는 “그의 춤은 움직임이 음악보다 앞서가곤 한다. 심지어 음악이 아예 없기도 하다. 그래서 서정성이 배제됐다고들 한다. 이는 음악에 문외한이기 때문이 아니라 움직임이란 무용의 근원에 철저히 천착하기 때문”이라고 평한다. 극단을 향해 치닫으면서도 결코 어렵지 않게 다가오는 나하린의 무용 세계. 이는 그의 삶이 그대로 무용에 스며있기 때문이 아닐까. 02-2005-0114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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