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계산회로의 빨간 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한상훈 초단 ●·이창호 9단

프로기사는 ‘ㅎ’과 ‘ㅊ’이 이름에 있어야 대성한다는 속설 아닌 속설이 있다. 조훈현과 조치훈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이창호, 유창혁으로 이어지며 힘을 받았고 최철한·박영훈·조한승 등으로 대물림(?)하면서 점점 더 그럴듯한 이야기가 됐다. ‘초단돌풍’ 3인방인 한상훈·배준희·박승화까지도 그럴듯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믿을 것은 못 된다. 서봉수와 이세돌이란 강력한 예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장면도(134~137)=이창호 9단과 한상훈 초단이 16강에서 맞섰다. 국면은 흑을 쥔 이창호의 우세. 바야흐로 잔끝내기 단계라 예전 같으면 이 판은 끝난 것으로 간주됐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창호 9단의 계산회로에도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한상훈 초단이 134, 136으로 젖혀 이었을 때 이 9단의 손길이 문득 137로 향한다. 구경하던 젊은 프로들의 눈에 경악과 함께 의구심이 번져 나갔다. A로 받아 주면 이겼는데 왜 이런 모험을 하는 것일까.
실전진행(138~145)=138로 한 점이 떨어져 나간다. 선수 5집 반 끝내기를 눈뜨고 당했다. 지고 있던 한상훈은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이 5집 반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장내에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흑는 과연 어느 정도의 위력이 있는 것일까. 더구나 한상훈은 백 두 점도 내줄 수 없다며 142로 잔뜩 버티고 있질 않은가. 이창호 9단은 145로 돌파해 상변을 절단했다. 이 백의 사활이 승부가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