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재외예술가와 한국 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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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권위와 상금액수에 있어서 세계 최고를 자랑해온 노벨賞이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와 강대국이나 주최국의 입김에 따라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왔음은 이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권위와 크기 때문에 강대국들이 집착하는지,강대국들이 집착하기 때문에 저절로권위가 커졌는지조차 아리송할 지경이다.
1930년까지 문학부문에서 단 한사람의 수상자도 내지 못했던美國이 정부차원에서 적극 공세를 편끝에 30년부터 38년까지 싱클레어 루이스,유진 오닐,펄 벅등 3명의 수상자를 냈던 사실만으로 그와 관련한 노벨賞의 位相을 짐작할 수 있다.그들이 자격없는 수상자였다는 뜻이 아니다.그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문학인들이 세계 각국에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그들이 수상하게된 배경에서 문화예술의 국제화와 그를 뒷받침하는 국가차원의 문화정책간의 상관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 자는 것이다.
나라 안에서 頂上에 우뚝 서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똑같은 문화예술적 土壤 위에서의 상대적 평가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두각을 나타내도록 되어있다.그러나 그가 국제무대에발돋움하게 되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기본적으로 는 세계 최고수준의 재능을 갖춰야 하고,설혹 그 재능을 인정받는다 해도 그것을 펼쳐보이고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세계무대에 진출하는 것조차 의미없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그 여건을 마련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지원 혹은 후원이다.그것은 개인일 수도,단체일 수도,국가일 수도 있다.
지원이나 후원의 규모 혹은 적극성 여부에 따라 예술가 개개인의 능력이 실제보다 더욱 돋보일 수도 있고,과소평가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족차원이든 국가차원이든 후원자를 가진 예술가와 그렇지 못한 예술가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때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리 韓國人 예술가들은 외롭고 불우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그들이 지닌 무기라고는 그곳에서의 인정여부가 계속 불투명한 재능밖에 없으며,후원이라고 해봤자 가족이나 친지차원이 고작이다.그런 악조건 속 에서도「한국인」의 이름을 드높이는 예술가들이 속속 배출되는 것을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외국여행중 한국 예술가들의 공연이나 전시회등 예술활동을 눈여겨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한결같이『혹시 저들이 韓國을 버렸거나,한국이 저들을 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한다.바꿔 말하면 그들은 다만「한국인」일뿐「한국」 이라는 나라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생각은 더 말할 것도 없다.외국에서 활동하다가 잠시 귀국한 한 음악가가 이렇게 술회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고국으로부터 끊임없이 陰陽의 도움을 받는 다 른 나라의 음악가들을 보면 부럽기 짝이 없다.우리는 그곳 한국공관에서조차 무시당하기 일쑤다.재정적 후원이 어렵다면 정신적으로나마 격려해주는 풍토가 아쉽다.』 바이올리니스트 張永宙양이나 소프라노 曺秀美씨 같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음악가들이 모처럼 귀국공연을 갖게 되면 사람들은 곧잘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지만그동안 그들이 겪었을 고뇌와 외로움을 한번쯤 천착해보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엊그제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의 음악감독 자리에서 전격 해임된 鄭明勳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예술의 나라」라는 프랑스에서 그가 차지한 위치는 분명 자랑스러운 것이었지만 작년 이맘때 京釜고속철도가 TGV로 결정된후 프랑스 정 부가 外奎章閣 도서 반환의 제스처를 보였던 사실과 관련해 분개하는 위정자들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프랑스가 예술을 정책적으로 육성하는 대신 그만큼 정치에도 적당하게 이용하는 나라임을 감안한다면괘씸하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藝術의 국제화 말뿐 王朝시대야 어쩔 수 없었고,日帝시대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나라를 되찾은지 50년이 다 되도록 외국에서 활동하는 우리 예술가들이 마치 고국없는 浪人처럼 떠도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 문화예술의 국제화는 말뿐이며 실제로는 요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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