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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忠誠派도 마음에안들면 제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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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차리즘 체제를 무너뜨린 러시아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가운데 하나로 帝政러시아의 行刑제도를 지적하는 학자가 있다.
정치범과 사상범에게 독서의 자유와 집필의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지식인들이 저술을 통해 혁명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혁명운동가를 키워낸 책인 체르니셰프스키의『무엇을 해야 하나?』나 후진 농업국인 러시아에서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가능하다고 주장한 레닌의 처녀작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의 발달』도 감옥과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쓰여진 것이다.
여기에 반체제 지식인들의 해외망명이 가능해 서유럽의 자유주의국가들에 帝政의 타도를 위해 싸우는 집단이 형성되고 이들의 선동선전물이 러시아 본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에 러시아에서는 혁명의 열기가 달아오를 수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후대의 소련 통치자들은 해외망명의 길을 철저히 봉쇄했다.국경수비를 비밀경찰이 맡은 것도 국경수비를 국방보다는 반체제 세력의 비밀 왕래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해외망명의 길을 막아 국내의 감옥은 언제나 정치.사상범으로 가득찼다.감옥은 계속늘어나 솔제니친의 표현대로 마침내「수용소 群島」가 나타났다.
소련 감옥은 帝政러시아와는 달리 독서와 집필의 자유를 허용치않았다. 반체제 사상의 성장과 전파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金日成체제의 북한은 반체제혁명이 일어났어도 몇 번은 일어났을 곳이다.그런데 소요와 집단항의가 있었다는 보도가 때때로 있었지만 위기상황은 거의 없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망명의 불가능이다.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남쪽은 휴전선,東西는 바다,이 조건은 체제쪽엔 수비의 地利였고 반체제쪽에는 不利였다.
망명이 사실상 봉쇄된 북한에서 반체제 사상이나 운동가들이 갈수 있는 곳은 오직 감옥 뿐이다.그래서 북한에도 정치범 감옥이계속 늘어나 마침내「수용소 군도」가 나타났다.
최근 국제사면위원회는 북한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주 적은 몇몇 사람들의 명단을 발표했다.高相文교사가 들어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국민들은 깊은 동정과 함께 북한정권의 포악성에 새삼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명단에 李羅英이 들어 있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없었다.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으나 그의 저술들을 통해 그가 얼마나 철저한 공산주의자며 金日成 찬양자인가를 알고 있다.그런그가「지구상의 살아있는 지옥」인 북한판 아우슈비츠에 갇혀 있다니! 李羅英은『조선민족해방투쟁사』라는 책으로 북한에서는 물론 일본의 朝鮮史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북한의 지도적 국사학자다.
그가 58년에 펴낸 이 책은「조선노동당 출판사」라는 출판사의이름이 말하듯 북한의 공식 史書였다.일본에서는 60년 조선문제연구소가 번역 출간했다.
李의 역사인식은 철저히 김일성的인 것이었다.『조선민족해방투쟁사』자체가 김일성 지시의 산물이었다.
55년12월 金日成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창조적-주체적 적용이라는 명제 아래 조선역사를 연구하라는 지시에 따라 1860년부터 1945년까지의 민족운동사를 체계화한 것이다.
李는 50년대 후반 崔昌益을 비롯한 延安派를 숙청하기 위해 벌인 反종파투쟁때도 金日成의 편에서 이론적으로 싸웠던 사람이다. 이런 그가 무슨 까닭으로 정치범 수용소로 급전직하한 것일까.60년대에 미친듯 전개된 金日成집안의 우상화 작업은 불가피하게「朝鮮史」를 다시 쓰도록 강요했는데 이때 눈에 벗어났는지 모른다. 「원쑤와 더불어 싸우다 죽은」으로 시작되는 이른바『인민해방가』의 작사자 林和와 작곡가 김순남도 모두 김일성 체제에서희생됐다.
李羅英에서 우리는 김일성 체제의 냉혈성,그리고「죽도록 충성하고도」처참하게 버림받는 북한 지식인의 비극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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