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만난 99년도 노벨문학상 작가 귄터 그라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한국 문학은 노벨상을 당연히 받을 만하고 받아야 하다. 언젠가는 받지 않겠습니까?”

대표작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문학의 거장 귄터 그라스(사진)의 말이다. 제 59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한창인 13일 자신의 전집을 출간한 독일 슈타이들 출판사의 부스에서 만난 그는 갈색 코듀로이 재킷 차림에 수수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었다.

 한국 문학의 수준을 높이 평가하며 밝은 앞날을 점친 그에게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한국작가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투옥됐던 작가의 작품을 접한 적이 있다”며 “그러나 이름을 기억하는 작가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안한 듯 “내 나이가 몇인데 이름을 기억하겠느냐”고 눙쳤다(그는 16일로 80회 생일을 맞는다). 독일 전후세대의 비판적 휴머니즘을 대표하는 그라스는 60년에는 독일사회민주당에 입당해 통일의 초석을 놓은 빌리 브란트를 위해 선거운동을 벌이는 등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혹시 남북 정상회담에 관한 소식을 들었는지 궁금했다.

 그는 “2002년 방한 당시 브란트의 ‘동방정책’ 같은 통일정책이 실시되는 것을 보고 설레인 적이 있다”며 “사소한 여행이든 기업간의 관계든 자주 만나야 통일을 향한 진전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이전의 군사독재 정권과 달리 과거 10년간 ‘다른 방식의 정부’가 들어서 많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큰 정치적 사건이었다”며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남북 화해 움직임을 멈추거나 거꾸로 간다면 한국 역사상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성이 힘을 잃은 시대의 마지막 계몽주의자’로도 불린다. 그에게 갈수록 가벼워지는 현대 문학은 어떻게 비칠까.

 “독서는 독자의 참여와 상상력을 요구하는, 일종의 노동이란 점에서 다른 오락거리와는 다르다”며 진지한 독서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에 따르면 청소년기에 700쪽이 넘는 작품을 읽어내는 훈련을 거쳐야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청소년의 독서를 유도할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아직도 젊은 작가들 못지 않게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아직까지 어떤 언론인에게도 다음 작품에 관해 귀띔해준 일이 없다”고 답했다.

 질문이 이어질 태세를 보이자 그는 “한국의 독자들이 내 작품을 읽어주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오늘 하루에만 대여섯 건의 인터뷰가 이어져 점심도 거르는 등 비인간적 대우를 받고 있다”는 농담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난해 나치 친위대 근무 복무 사실을 털어놔 화제가 됐던 자서전 『양파 껍질을 밝히며』는 내년 초 국내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프랑크푸르트=김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