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31> 가을과 함께 떠나가는 悲運의 무시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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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15면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가 사라지는 것을 보는 건 고통스럽다. 그 훨훨 타오르던 불꽃이 서서히 소멸의 기운을 보일 때, ‘영원할 수 없음’에 나약해진 우리를 확인하고 하늘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불꽃의 자취마저 사라져 아예 보이지 않게 됐을 때, 우리는 문득문득 그의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리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아쉬워한다.

마이크 무시나(뉴욕 양키스·사진). 그가 올 시즌을 끝으로 무대 뒤로 떠난다면, 이번 가을은 또 한 명의 전설을 잃어버리는 아쉬운 계절로 남을 것 같다. 그의 성(姓)과 발음이 비슷해 붙여진 별명 ‘주걱뿔사슴(Moose)’처럼 그는 ‘사슴을 닮아 외로운 스타’였다. 이번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그보다 더 챔피언반지를 간절히 원했던 선수는 없었을 것이다.

무시나는 통산 250승을 거둔 위대한 투수다. 스탠퍼드대학 경제학과에서 3년 반 만에 학위를 받은 학구파로 유명하고 조용한 성품과 준수한 매너로 리그 전체의 본보기가 된 스타다. 그러나 그에게도 그늘이 있다. 그에겐 챔피언반지가 없고 사이영상, 개인타이틀 부문에서 늘 한 뼘이 모자라 2위에 그치는 아쉬움이 따라다녔다. 그는 정규시즌은 물론 포스트시즌에서도 늘 제 몫을 해줬지만 우승 샴페인을 터뜨리지는 못했다. 가장 아쉬웠던 해가 2001년. 그는 이전까지 3년 연속 정상을 차지한 강호 양키스로 팀을 옮겨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그해 양키스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김병현!)에게 7차전 승부 끝에 챔피언을 내줬다.

무시나는 개인적으로도 ‘1등’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는 20승, 사이영상, 퍼펙트게임 등에서 마지막 퍼즐 하나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전성기를 구가할 때 19승을 두 번, 18승을 세 번이나 기록했지만 20승은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는 투수 최고의 영예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여섯 번이나 4위 이내에 들었지만 한 번도 1위는 기록하지 못해 ‘올해 최고의 투수’라는 호칭을 얻지 못했다. 불멸의 기록 퍼펙트게임도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놓치고 말았다.

이번 포스트시즌은 무시나에겐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 그는 올 시즌 11승(10패)을 올렸지만 시즌 막판 급격히 구위가 떨어져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포스트시즌 들어서 양키스의 조 토레 감독은 무시나를 4차전 선발로 확정하지 않았다. 토레 감독은 시리즈 전적 1승2패로 수세에 몰리자 무시나 대신 1차전 선발 왕첸밍을 4차전 선발로 내세웠고 무시나를 그 경기 구원투수로 기용했다. 지난 10일 무시나는 그렇게 양키스타디움 마운드에 올랐고 또 한번 사슴처럼 외롭게 던졌다. 그날 양키스는 패했고, 그의 18번째 시즌은 또 한번 챔피언반지 없이 끝났다.

야구 포스트시즌의 열기가 뜨겁다. 한국프로야구도 14일부터 SK와 맞설 한국시리즈 진출팀을 결정짓는 플레이오프가 시작된다. 이처럼 10월은 화려한 가을의 전설을 써내려 가는 계절이지만 그 전설에는 무시나의 사연처럼 그늘진 단면이 우리를 애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은 쓸쓸하고 포스트시즌의 밤 공기는 차가운지 모른다. 무시나의 그것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려한 스타. 그런 스타들의 마지막 불꽃과 그 뒷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계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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