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조백일장>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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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시조는 절제의 미를 잘 살려야 하는 시다.자음이나 모음이 지나치게 중복되면서 불협화음을 내지는 않는지,음보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는지,시대의 아픔을 긴장감있게 담고 있는지 등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성찰이 전제되지 않는 한 좋은 시조 쓰기란 어려운 것이다.이러한 염려를 먼저 떠올리면서 우리는김동호씨의 「가뭄」을 장원으로 뽑는데 쉽게 합의했다.이영필씨나한재인씨의 작품을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라 이 작품이 시조의 전범에 한걸음 더 앞서 다가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뭄」은 단순한 계절의 노래일 수 있다.그러나 절약과 함축의 미를 살리려 애쓴 흔적이라든지,「베필에 칼 건너가듯/가슴 긋는 별빛」등은 이미지가 다소 낡은듯 하나 많은 훈련없이는 찾아내기 어려운 그림이다.이영필씨의 「퇴근길」은 맞벌이 부부의 한 생활 단면을 시조로 표현한 작품이다.뛰어난 佳句가 안보이지만 느슨하거나 지나치게 관념에 흐르고 있지는 않다.
한재인씨의 「바람개비」는 많은 얘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그것은 시대의 빛과 어둠을 껴안고자 하는 시인의 열망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다소 구체성을 잃고 있다.이점 유의한다면 더 좋은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金賢씨의 「능금 이 익을 무렵」은 소품이지만 절제된 언어가 빚는 긴장감이 있다.우경화씨의 「호박꽃」은 미소를 머금게 하는 비유가 있고,오윤정씨의 「그대보내고」는 객관화 되지는 못했지만 적절한 정감이 있으며,정능아씨의 「벌판에서」는 피상적이긴 하나 대상을 그려내려는 성실한 노력이 엿보인다.김향숙씨의 「아버지」는 시집간 딸이 아버지의 정을 되새기는 갸륵한 효심이 곱다.
〈金顯.이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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