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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클래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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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2일 막을 내렸다. 역대 최다 관객에 아시아 최고 영화제의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나 진행·의전·통역 등 운영상 잡음이 잇따랐다. 규모가 커지고 행사는 늘어났지만 단기계약과 자원봉사에 의존하는 스태프들의 비전문성이 문제였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개막식 진행에 불쾌감을 표했고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기자회견은 중간에 통역이 교체됐다. 작은 악재들이지만 그간의 성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러 구설 속에서도 ‘마스터 클래스’는 호평받았다. 거장 감독의 육성을 듣는 자리다. 박찬욱 감독이 강사로 초대받은 베를린영화제 ‘베를리날레 탤런트 캠퍼스’ 같은 워크숍 프로다. 전회 매진됐고 관객들은 감동의 박수를 쳤다.

영화 형식 실험으로 유명한 영국의 거장 그리너웨이는 “전통적 영화의 죽음”을 선언했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누구나 영상물을 만들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보는 시대에 아직도 1970년대 틀을 고집하는 전통 영화는 죽었다”며 “여기 온 영화의 대부분은 쓰레기다. 미래의 영화는 극장이 아니라 일대일로 관계 맺는 랩톱 안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1세기 영화감독은 쌍방향 디지털 멀티미디어의 항해자가 돼야 한다는 결론이다.

반면 프랑스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는 고전적 예술영화의 향취로 가득 찼다. “영화는 인생을 사랑하게 만드는 약·비타민”이라며 “2만 편의 영화를 봤는데 더 이상 남이 만든 약 처방이 잘 듣지 않아 직접 감독이 됐다”고 회상했다. 영화와 인생을 일치시키는 고전적 태도도 보였다. “영화를 통해 삶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으니 영화가 진짜 부모다.“ “내가 만든 41편은 모두 내가 직접 겪은 일들이고 내가 처한 당시 현실의 완벽한 반영이다.” 당연히 촬영 현장과 연기의 즉흥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죽을 날을 모르는 것처럼 배우들에게도 시나리오의 결말을 보여 주지 않는다. 촬영 후 매일 밤 시나리오를 다시 썼고 극중 날씨도 통제하지 않았다. 가령 ‘남과 여’의 비 오는 장면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촬영 날 비가 오니까 찍은 것이다.”

영화의 죽음을 선언한 감독, 영화는 인생 자체라며 불멸성을 믿는 감독. 어느 쪽이든 공통점은 기술과 돈벌이 이상의 철학과 사유를 담아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들이 ‘마스터’로 불리는 이유다. 독창적 사유로 자극을 주는 사람. 한국영화의 진정한 발전도 이런 거장들이 속속 나와 줄 때 가능할 것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