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사망과 한반도 정세/브루스 커밍스(해외전문가 긴급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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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북통일엔 긍정적 영향”/김일성보다 쉬운상대 만나
북한 김일성주석의 사망으로 한반도 정세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김정일의 권력승계는 어떻게 마무리될 것이며 남북대화와 통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전세계를 놀라게 한 김일성의 사망과 관련,해외전문가들의 진단을 연재한다.<편집자주>
북한 김일성주석의 사인과 관련,일부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자연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얼마전 북한을 방문했던 샐리그 해리슨 카네기재단 연구원으로부터 김일성이자신과 식사도중 갑자기 말을 못하는등 건강에 다소 이상이 있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한국인들,특히 북한인들의 의식구조상 그를 암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그러나 그 어떤 것도 단언할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북한의 현 상황은 말그대로 「불확실성 그 자체」 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권력승계 문제에 관해서는 별 문제가 없으리라고 본다.예를 들자면 과거 장개석 대만총통 사후와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지 않을까.북한은 지금 갖가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내부적으로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체제 전체의 위기의식 으로 인해 가급적 수습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후계자 구축 작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따라서 60,70대 세대는 어떨지 모르지만 30∼50대에 이르는 다수의 세대층은 이미 김정일의 후계자 부상을 당연시하고 있을 만큼 권력승계에 관한 정지작업은 비교적 잘 돼있다.
군부 동향이 주목되지만 빨치산 투쟁 1세대중 대표주자라 할수있는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 그동안 김정일에게 보여온 충성을 감안해 보면 군부 동요도 그다지 문제될 것 같지는 않다.따라서 오진우등 기존 세력들이 여전히 그를 지지하며 새로운 정권내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집단지도체제 형태로 권력의 틀이 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물론 확실성보다는 어디까지나 추측 또는 개연성 정도의 차원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현 단계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북한의 변화를 얘기할 수는 없으리라는 판단에서다.이는 다시 말하면 상황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즉 스탈린이나 마오쩌둥(모택동)사후와 같은양상이 전개될 수도 있음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새로 출범할 북한정권에 대해 어느정도「감」을 잡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주일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김정일을 주축으로 한 새 정권이 기존 대화국면을 유지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전제할 때 남북정상회담은 잠정적으로 연기될 공산이 크지만 빠르면 8월께에는 재개될 수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김일성 사망 이후에도 북한이 대화를 계속하려 할 것이라는 판단의 근거는 미국이나 한국등과의 관계개선이 궁극적으로 북한정권의 안정화에 절대 긴요할 것이라는데 있다.
남북 통일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김일성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분명 바람직한 일은 아닌듯 싶다.특히 40여년간 쌓아온 그의 전설적인 카리스마 등을 감안해 볼때 뒤를 이을 김정일이 북한의 국론을 얼마나 긍정적인 방향으로,얼마만큼 효과적으로 결집시킬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이 문제는 반드시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우선 한국 입장에서 볼때 김정일은 오랜 관록을 지닌 김일성보다 상대적으로「다루기」가 쉬울수 있다.또 김정일은 김일성에 비해 권력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으므로 협상에 있어 상대적으로 한국측 입지가 강화될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북한을 몰아붙여서는 안된다.만약 북한이 걷잡을수 없는 소용돌이에 말려든다면 이는 한국이나 주변국들 입장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따라서 한국이나 미국 모두 북한의 체제가 안정을 찾을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며 앞으로 대북정책도 그러한 기조 위에서 수립돼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다행히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G7정상회담 도중 김일성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는등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을 둘러싼 주변국들 가운데 북한에 가장 영향력을 크게 행사할 수도 있고 동시에 북한의 변화에 가장 민감할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의 급속한 붕괴나 동요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따라서 중국은 가능한한 북한이 조속히 안정을 찾을수 있도록 도우려 할 것으로 보인다.이같은 제반 요소들을 종합해 볼때 김일성 사망으로 인한 여파는 한마디로 단정하기 쉽지 않다.앞서 언급했던대로 불확실성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묘사일지도 모른다.그러나 굳이 상황판단을 내리라면 긍정적인 쪽으로 무게를 두고 싶다.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세심한 대응을 해나가야 할 것임은 더말할 나위가 없다.<미 노스웨스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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