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Q: ‘메세나’가 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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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학력 위조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때문에 덩달아 유명해진 용어가 있죠? 바로 ‘메세나’입니다. 이는 기업이 문화예술 활동에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활동을 일컫습니다.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인 셈이죠. 신씨 사건에서 메세나가 문제 된 것은 기업들이 신씨가 근무했던 성곡미술관에 거액을 후원한 동기가 그리 순수하지 않다는 의심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신씨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같은 권력 실세와 친분이 두터웠다는 점에 미뤄 기업이 뭔가 대가를 바라고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죠. 그래서 ‘권력형 메세나’란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메세나’의 유래=로마 아우구스투스(BC 63~AD 14) 황제 시절의 정치가였던 마에케나스(Maecenas)의 프랑스 발음이 메세나(Mecenat)입니다. 마에케나스는 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와 같은 당대의 대 시인을 후원하는 등 문화예술의 보호자를 자처했다고 합니다.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 및 후계자로 라틴문학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영향도 있었겠죠. 하지만 메세나가 ‘기업의 문화예술 활동 후원’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은 훨씬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1966년 미국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록펠러가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 일부를 문화예술 활동에 할당하자고 건의했고, 이듬해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면서 ‘메세나’란 용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2000년 전의 마에케나스가 메세나로 부활한 셈이죠.

 이렇게 미국에서 시작된 메세나 운동은 각국으로 확산돼 25개국에서 32개의 메세나 협의회가 조직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선 94년 4월 한국메세나협의회가 발족돼 현재 185개 기업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죠.

 비록 메세나가 마에케나스에서 유래되긴 했지만 근대적 의미의 메세나 전형을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갑부였던 메디치 가문에서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15세기 후반 피렌체 공화국의 수반을 지냈던 로렌초 메디치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예술가와 많은 인문학자를 지원해 메세나의 원조 격으로 불리고 있죠.


 ◆메세나 왜 문제 되나=틴틴 여러분은 기업이 각종 이벤트 상품으로 증정하는 공연 관람권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적어도 공연이나 전시회 포스터에 특정 기업이 후원한다는 내용을 본 적은 있을 거예요. 기업이 공연 등에 직접 후원금을 내거나 관람권을 사서 고객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전형적인 메세나 활동에 해당됩니다. 공연장이나 전시장과 같은 시설물을 지어 문화예술가에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나 공짜로 시설을 빌려주는 것도 메세나의 일종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메세나가 기업의 브랜드나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대놓고 오른손이 한 일을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도움을 받는 문화예술가가 정치권력이나 인맥을 이용해 기업의 메세나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물론 후원을 한 기업은 후원의 대가를 바랐을 수 있겠죠. 신정아씨의 경우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으로 일하면서 산업은행·대우건설·현대자동차 등으로부터 수억원을 후원받았습니다. 일부 회사가 신씨를 통해 많은 미술품을 구입하기도 했고요.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신씨 개인의 역량이 워낙 뛰어났다거나 후원할 만한 전시회가 기획됐다고도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신씨가 변양균씨와 막역한 사이로 밝혀지자 이들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싸늘해졌지요. 특히 산업은행의 김창록 총재, 전 대우건설 사장이었던 박세흠 대한주택공사 사장이 변씨의 고교 동기동창이란 사실도 세간의 의심을 증폭시켰죠. 신씨가 변씨에게 기업의 후원을 부탁했고, 기업들은 대가성 청탁을 바랐거나 고교 동창이란 이유로 신씨와 변씨의 부탁을 들어줬을 거란 얘깁니다. 결국 문화가 정치·경제권력과 결탁했다는 의심을 받게 된 것이죠. 신씨와 기업 사이에서 이뤄진 후원을 ‘권력형 메세나’라 부르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발 구르는 문화예술계=신씨가 변씨에게 기업의 후원을 부탁했는지, 기업이 대가를 바라고 신씨의 미술관에 후원을 했는지는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기업의 메세나 활동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메세나 활동에 열심이었던 포스코의 관계자는 “당장 메세나 관련 금액을 줄이는 것과 같은 조치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색안경을 끼고 메세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기업의 메세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걱정이 더 많아진 것은 후원을 받는 문화예술계겠지요. 특히 미술계는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신씨 사건이 모두 미술 분야와 관계된 데다 지난해 메세나 지원 규모(1840억원) 가운데 33%에 해당하는 615억원이 미술계에 지원됐기 때문이죠.

 한국메세나협의회 관계자는 “일부의 잘못된 후원금 모집과 지원 행태가 전체 메세나 활동을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돼선 곤란하다”며 “일반 시민들이 수준 높은 예술활동을 즐기고, 그에 힘입어 문화예술이 더 발전하기 위해선 메세나가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준현 기자

국내 메세나 후원금 4년 새 두 배 이상 늘어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요구가 많아지고, 사회 전반의 문화예술 수요가 늘면서 메세나 활동에 참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국내외 유명 기업치고 메세나 활동에 손을 대지 않는 기업이 없을 정도다.

 미국의 경우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 맥주를 만드는 밀러의 지주회사인 알트리아그룹은 ‘현대 무용의 은인’이란 칭송을 듣고 있다. 1950년대부터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에 나섰기 때문이다. IBM은 90년대 초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을 늘리기까지 했다.

 국내 기업은 90년대 들어 메세나 활동이 본격화됐다. 지난해 삼성그룹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원금은 498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문화예술계에 74억원을 지원한 현대·기아차그룹은 ‘H·art’란 메세나 브랜드를 만들고 지원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LG·SK 등도 공연장을 건립하거나 직접 후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에 따르면 기업계에 메세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2002년 720억원이었던 문화예술 지원액이 지난해 1840억원으로 4년 새 두 배 이상이 늘었다.

 협의회 관계자는 “아직 지원 규모가 선진국에 비해선 많이 부족하지만 지원금 증가 속도는 빠르다”며 “신정아씨 사건의 부정적 영향을 털고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크게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신씨 사건을 계기로 기업의 메세나 활동에도 장기적인 전략과 투명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씨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후원 부탁을 받은 기업의 고위 임원이 별다른 절차 없이 독단적으로 지원을 결정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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