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사복경찰… 평온속 긴장/「천안문 사태」 5주년 북경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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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학가 밤 10시이후 통금/지도부,경제불안 맞물려 과민반응
민주화를 외치던 군중들이 탱크로 중무장한 인민해방군의 발포로 무참히 쓰러졌던 89년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지 5주년. 전세계인이 충격과 분노속에 지켜보던 천안문광장은 국내외 관광객들로 북적대면서 여느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모습이다.
그러나 외견과 달리 내부적으론 무거운 긴장감이 희뿌연 북경 하늘을 짓누르고 있다. 천안문광장 입구에는 정상복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돼 출입자들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외국여행객을 제외하곤 광장진입 자체를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외국여행객이라 하더라도 여행사 정식 가이드가 동행치 않으면 광장출입이 불가능하긴 마찬가지다.
광장내 중국인은 대부분 사복경찰이다. 3일 천안문광장을 촬영하던 미국 CBS기자 3명은 공안분실에 끌려가 테이프를 모두 빼앗기고 두시간동안이나 조사를 받았다.
5월말부터 천안문광장 앞을 지나는 차량에 대해선 오후 11시부터 무조건 집총검문을 하고 있다. 북경대 등 주요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해정구일대 역시 정사복경찰들이 도처에서 눈에 띄고 북경대 주변에는 오후 10시 이후 행인들의 통행을 차단하고 있다.
중국지도부가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경찰과 군에는 5월중순이후 1급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 최근엔 어떠한 대중집회도 불허하고 특히 집단소요사태는 초기단계에서 즉각 진압하라는 특별지시가 하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안문사태 발생일을 전후해 치안을 강화하는 조치는 89년이후 해마다 있어온 일이긴 하지만 5주년을 맞는 올해엔 예년과 달리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중국지도부의 과민반응은 국내 정치·경제·사회상황과 맞물려 있다.
89년이후 중국은 정치적으로 장쩌민(강택민) 국가주석겸 당총서기­리펑(이붕) 총리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최고실력자 덩샤오핑(등소평)의 건강이 급격히 쇠락,등사후를 대비한 내부 권력투쟁 조짐이 보이는 등 권력핵심부 분열에 따른 불안감이 짙게 깔려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경제불안이다. 20%를 웃도는 고인플레,개혁의 급류를 견디지 못하고 도산직전에 몰린 국유기업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다량의 실업자는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금년 1·4분기엔 전체국유기업의 47%가 적자를 기록했다.
70만명에 이르는 근로자들이 몇달치 임금을 받지 못해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에 걸쳐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시장경제 도입에 따라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계층간 소득격차 심화,개방혜택을 누린 연안과 내륙간 심각한 불균형,도농간 격차 심화 등이 중국지도부를 긴장시키는 고민거리로 대두된지 오래다.
따라서 비록 행동으로 표현치는 못하지만 「불확실한 세상」을 사는 오늘의 중국인들 뇌리에는 5년전 각인된 악몽이 쓰라린 기억으로 살아있다.
그렇다고 정치를 통해 단시일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어서 하루아침에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로 남을 것 같다.<북경=문일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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