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골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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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6일자 프레데릭 뉴스 포스트라는 미국 메릴랜드의 한 지방신문에 「이상한 방문」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 한장이 크게 실렸다. 골프장 헬기장에서 해병사병의 경례를 받아가며 대통령 전용기에 오르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지방신문에 실린 바로 이 한장의 사진이 또 한번 클린턴 대통령의 입지를 어렵게 하고 있다. 문제의 인물은 대통령의 아칸소시절 친구면서 백악관 행정국장인 데이비드 와킨스.
대통령 전용기를 몰래 타고 그것도 근무시간중에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지방신문 사진 한장으로 들통이 나버렸다. 이어 얼마나 기강이 해이해졌으면 이럴 수가 있느냐,아칸소 마피아의 방자함이 여기까지냐는 정치공세가 일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항되는 대통령 전용기를 몰래 타고 그것도 근무중에 골프를 쳤다는 사실은 미국 국민뿐 아니라 이역만리 우리들까지 「그럴수가!」하는 분노를 낳기에 충분하다. 새정부 출범부터 공직자 골프를 금지한 조처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견 선견지명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 저녁모임에서 어느 국회의원은 『제발 골프 좀 치게 허락해달라』는 애교섞인 건의를 대통령에게 직접했다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대통령이 인자한 큰형님 같아서 마음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전제를 깐뒤 『골프 좀 치게 해주십시오. 골프를 못치니 술만 먹고 고스톱만 치게 되니 돈이 더 들어갑니다. 저는 내일부터 골프를 치겠습니다』고 하소연 겸한 통고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 비행기까지 몰래 타고 근무중에 골프를 치는 미국 관리에 비하면 우리네 공직자들은얼마나 순진하고 순응적인가. 골프를 치지 말라고 누가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몰래골프도 아닌 공휴일 골프까지 치지 못해 대통령에게 직간까지 하고 허락까지 받아야 하는지…. 왕조시절에나 봄직한 경직성이 현대식 스포츠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모양이 보기에 거북하다.
골프를 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정권적 차원이나 도덕적 판단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다. 부킹도 힘들도 돈이 많이 드니 당분간 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안치면 된다. 또 건강을 위해 골프보다 좋은 운동이 없다고 판단하면 골프를 치는게 정상적인 사회다. 몰래골프만 아니라면 이젠 모든 공직자가 골프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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