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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한·미 제조·서비스 업종 규제 현황 조사해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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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앞두고 한국의 두꺼운 기업 규제 장벽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벌써부터 시장 개방 이후 미국 기업과의 레이스에서 ‘규제 족쇄’에 발목 잡혀 뒤처지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힘든 각종 규제들로 손발이 꽁꽁 묶여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두려움은 상대편 미국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FTA 비준을 전후로 한국 진출 채비를 서두르거나 사업 확대를 노리는 미국 기업들은 자국엔 없는 생소한 법이나 복잡하고 처벌 강도가 센 ‘규제의 늪’에 빠져 낭패를 보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규제에 발목 잡힌 국내 기업=전국경제인연합회는 19일 ‘한·미 간 규제 현황 비교 및 개선 방향’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한국과 미국의 제조·서비스 10개 업종을 놓고 두 나라 중 어느 쪽에 규제가 더 많은지 꼼꼼히 따져봤다. 조사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한국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훨씬 많았던 것이다. 미국에 비해 과도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해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규제가 46가지에 달했다. 이 중 미국에 없고 한국에만 있는 규제도 18가지였다.

 대표적인 규제는 비은행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금융·산업 분리법이다. 은행에만 금산 분리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지급·결제 기능이 없는 비은행 금융회사도 똑같이 금융회사 동일 계열 소속 타회사(산업 자본)의 주식 소유를 제한받는다. 처방이 필요 없는 약이나 일반 판매약의 소매 유통점 판매 금지도 미국에 없는 규제다. 개발도상국 지원을 명목으로 국제선 항공권 한 장당 1000원을 부과하는 제도 역시 우리나라에서만 찾을 수 있다. 한 항공회사의 임원은 “내년부터 이 법이 시행되면 애꿎은 항공사들만 민원과 항의에 시달릴 수 있다”고 걱정했다.

 미국보다 강도가 높거나 비합리적인 법안(15건)들도 문제로 지적됐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리콜 대상을 ‘안전 등을 이유로’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한 데 비해 미국은 ‘안전을 이유로’로 못박았다. ‘얄궂은 고객’에 기업들이 마냥 시달리는 일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또 미국에는 지방의 중소 건설사를 보호하는 제도가 있지만 적용 대상을 ‘개발이 덜 된 지역’에 한정한 반면, 우리나라는 대형 건설사들이 지방 공사를 따려면 반드시 해당 지역 중소 건설사와 공동 입찰하도록 하는 장벽이 만만찮다는 지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이건범 박사는 “국내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꽤 완화됐지만 조문에 없는 ‘관행법’이 아직 적잖다”고 지적했다.

 ◆미국 기업도 ‘로컬 룰’에 떤다=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에는 최근 한국의 기업 관련 규제 내용을 궁금해하는 미국 기업들의 문의 전화가 부쩍 늘었다. 대개 FTA 타결 이후 한국 진출을 꾀하는 기업들이다. 주한 미국 기업의 한 인사는 “한국의 기업 관련 규제는 관계 부처마다 법이 다른 경우가 많고 법 적용도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평판이 있다”고 말했다. 태미 오버비 암참 소장은 “한국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인들은 노사 문제와 더불어 정부 규제를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꼽는다”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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