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호 자전거 출발 월드카로 발전-기아그룹 창립 반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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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起亞그룹이 25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起亞의 역사는 한마디로 시련과 도전의 역사다.
44년 日貨 50만엔,종업원 50명으로 출발한 기아는 반세기가 지난 현재 자본금 3천6백억원,연매출액 5조7천억원,자동차생산대수 78만대에 이르는 종합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했다.
44년12월 창업주인 金喆浩사장은 영등포구 도림동에 1천4백여평의 공장을 건설했다.상호는 京城精工으로 자전거제조및 부품생산,볼트.너트류및 샤프트제작 수준이었다.
52년 金사장은 회사이름을 起亞産業으로 바꾸었다.起亞란 아시아에서 일어나 세계로 진출한다는 의미.기아는 사명 변경후 그해3월 국산자전거 1호인 3000리호 자전거 개발에 성공했다.57년 始興공장을 준공하고 62년1월 국내 최초의 3륜자동차인 기아마스타와 2륜 오토바이 기아혼다를 내놓았다.71년9월에는 처음으로 4륜트럭인 E-2000과 E-3800을 내놓았다.
73년 현재의 所下里공장을 준공하고 기업을 공개했다.공모주식의 10%는 종업원에게 배정,종업원지주제를 도입했다.기아는 정부의 국민차 생산계획에 따라 승용차 생산계획을 추진,73년7월국내 최초로 가솔린엔진을 개발하고 다음해10월 배기량 9백85㏄의 소형승용차 브리사(S-1000)를 생산했다.
그러나 기아의 승용차생산은 80년대초 당시 정부의 산업합리화조치에 의해 중단됐다.이 시기 기아는 승용차 생산중단,2륜차 사업포기,東亞자동차와의 기업합병등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이에 기아는 난국돌파의 마지막 수단으로 자본과 경영을 분리,전문경영체제를 도입하고 81년10월 金善弘 당시 起亞기공사장을 기아산업사장으로 선임했다.구사.재건운동,국내 초유의 원가절감운동 전개등으로 합병을 백지화시켰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기아는 2년간의 누적적자 5백3억원을 3년만에 5백64억원의 흑자로 전환시켰으며 그 유명한「봉고신화」가 탄생하게 된다.당시 다른 기업들은 기아에 대한 사례연구를활발하게 전개했다.
86년3월 새로운 승합차인 베스타를 개발했고 창업 42년만에처음으로 내집을 마련,여의도 사옥으로 이전했다.다음해 1월에는월드카인 프라이드를 탄생시켰고 이어 10월에는 두번째 승용차인중형세단 콩코드를 시판했다.90년3월 사명을 기아산업에서 起亞自動車로 바꾸었다.
지난해 기아는 내수 44만3천대,수출 15만8천대등 총 60만대를 판매했고 올해는 78만대를 목표로 국내시장은 물론 해외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기아는 지난해10월 牙山灣공장 제2공장 기공식을 갖고 중기경영발전계획을 발표,97년까지 6조2천억원을 투자해 국제경쟁력을갖추고 생산 1백50만대,수출 50만대를 달성키로 했다.
자동차 만들기에만 50년.수레바퀴에서 2륜.3륜.4륜차,그리고 차세대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자동차와 관련된 수직계열을 이루고 있는 기아는 주인의식과 도전의식을 바탕으로 세계 10대 자동차기업을 향해 달리고 있다.
〈李杞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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