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외교」까지 간 북 식량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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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일성 직접요청은 대외 「심리전」 측면도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5월초 인도의 서벵골주 수석장관에게 식량·의료품 긴급지원을 요청했다는 보도는 식량난의 심각성을 거듭 확인해주고 있다.
북한 식량난은 99년이래 줄곧 계속돼왔고 특히 지난해는 「풍년」 선전에도 불구하고 냉해·병충해 피해로 사정이 더 심각해졌다.
통일원이 지난해 8월 여러 정보를 종합해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곡물 총생산량은 90년의 4백81만t에서 91년 4백43만t,92년 4백27만t,93년 3백88만t으로 줄었다. 북한 주민의 식량소비량은 연 5백50만∼6백50만t이다.
북한 농업통계 및 식량문제를 계속 분석해온 김성훈교수(중앙대)는 『93∼94년에 식량난이 더 심각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진단한다.
북한 곡물생산에 관한한 정확한 통계를 잡아내기가 어려우나 그 심각성은 「일부지역의 식량배급 지연」이라는 탈북자들의 증언이나 북한이 중국에 식량원조를 요청했다는 보도로 충분히 감지돼 왔다.
또 북한이 3∼4년전부터 동남아 외교를 부쩍 강화한 것도 식량외교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김 주석이 직접 식량원조를 요구한 것은 그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경제 전문가들은 식량난의 원인을 냉해·가뭄 등 자연재해나 병충해보다 토질의 산성화 및 집단주의적 농업관리방식의 문제에서 찾고 있다.
자연요인이 아닌 이같은 구조적 문제로 인한 식량문제는 북한이 현재의 집단생산체제를 중국과 같이 농가 생산청부제 등으로 바꾸지 않고는 해결되기 힘들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 12월 「농업제일주의」정책을 표방하고,올 2월 김일성의 사회주의 농촌체제 30주년을 맞아 전국농업대회까지 열어 앞으로 3년간 농업생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천명하면서도 농업개혁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협동농장을 국영농장으로 전환하거나 농업연합기업소로 묶는,더 적극적인 집단화 처방을 내렸다. 때문에 북한의 식량난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해결되기 힘들 전망이다.
한편 김 주석의 식량원조요청은 부분적으로는 「심리전」 측면도 있다.
북한이 경제사정 때문에 미·일 등과의 관계개선을 절박하게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핵문제에선 강경·지연전술을 지속해 주변국가의 판단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얘기다.
한·미의 대북정책 수립에서 판단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 바로 북한의 경제사정 악화정도 및 대외고립 지속때 체제존속 여부이기 때문이다.
김 주식이 최근 미국·한국방문 희망의사를 밝힌데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온건·강경,체제유지에의 불안감·자신감의 양날을 교차로 내보여 외부의 관측과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관심을 쏟아왔고 그 최일선에 김일성이 서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유영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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