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아들 어머니 눈물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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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제13회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13일 서울시교육청에 올해 막내아들을 고교졸업시켰다는 한 어머니가 「요즘 세상에 보기드문」 자식의 은사선생님들을 표창해달라는 색다른 편지를 보내왔다. 『일부 선생님들의 잘못보다 많은 선생님들의 참된 사도 실천이 세상에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이 어머니(54)는간질을 앓는 아들(18)이 선생님들의 보살핌으로 올 2월 서울용산고를 졸업할 수 있었다며 「거룩한 선생님들의 눈물 겨운 제자사랑」을 소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어머니의 추천을 받아들여 이들 용산고 교사들에게 교육부장관.교육감표창을 이미 확정된 스승의날 포상과는 별도로 상신했다.
어머니의 편지를 소개한다.
『자식 셋중 제일 총명했던 막내가 중학 2학년 어느날 사지를비틀고 거품을 물며 첫 발작을 일으켰을 때 어미의 심정을 무어라 표현하겠습니까(中略).
간질병 치료약을 먹어 가면서 각고의 노력 끝에 용산고교에 진학한 뒤 아들녀석은 학교에서 발작을 일으키고 나서도 「제 손발이 돼 병간을 마다 않으시던 선생님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며 다시 책가방을 챙겨들었습니다.그때의 놀라움은 뭐라 표현할 수 없어요.알고보니 담임선생의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1학년 담임이시던 田錫均선생님(41.수학)께서는 「군복무시절의무병으로 정신병동을 담당했던 내가 네 담임을 맡은 것은 운명인지 모른다」며 성적이 떨어질까봐 치료약을 먹지 않곤 했던 지훈이의 소지품 검사를 해가며 약을 챙겨 주셨습니 다.
田선생님은 또 지훈이가 진급할 때면 인문계 고교인 탓에 여기저기서 불평 아닌 불평까지 들어가면서도 새 담임선생님과 급우들에게 지훈이를 위한 병간법을 알려주시기도 했지요.2학년에 올라가서도 선생님들의 보살핌은 릴레이처럼 계승됐습니다 .
수학여행이나 극기훈련을 앞두고 보낼 수도 말릴 수도 없어 고민하던 제게 田선생님과 2학년 담임이시던 全仲植선생님(33.現잠신고)은 「맡겨 달라」며 약을 챙겨 여행을 데려 가셨고 지훈이 병세가 심해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때면 洪裕卿 양호선생님(34.여)과 함께 퇴근시간을 넘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中略). 지훈이가 급우들의 놀림이나 심한 발작으로 용기를 잃을라치면 趙承觀교감선생님(58.現영등포중 교장)이 직접 나서 용기를 북돋워 주셨습니다.재학 3년동안 은혜를 입은 용산고 선생님들을 꼽기엔 열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사도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는 세상이지만 지훈이는 선생님 사랑때문에 학교를 다녔고 그덕에 병원에 입원해서까지 통학 하며졸업을 했습니다.
그 흔하다는 「봉투」 한번 드리지 못한채 3년동안 속으로만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했던 은혜를 감사의 말과 글로나마 갚고 싶은 어미의 심정을 헤아려 거룩한 선생님들을 꼭 표창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신체장애자에 비해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신장애자들에 대한 사회와 정부의 각별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權寧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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