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공단 창성화학/일터 신명나는 삶의 현장을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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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스티로폴 생산…자회사 부도로 파산/업무과장 중심 월급없이 밤샘 근무
『회사는 반드시 살아날 겁니다. 우리 손으로 키워온 회사를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돌보겠습니까.』
공장 곳곳에는 활기가 넘치고 사원들의 표정은 밝다.
근로자들은 성형기에서 찍혀져 나오는 TV포장케이스를 묶느라 정신이 없다. 성형기에서 뿜어 나오는 스팀과 기계소음이 가득한 구미공단 한켠의 스티로폴 케이스 공장­ 적어도 외형상 이곳은 다른 공장과 다른 점이란 없다.
창성화학. 84년 구미공단 2단지 1만여평에 세워진 국내 굴지의 스티로폴 성형업체로 전자제품 케이스·과일상자 등 농산물 포장용기를 생산해 왔다.
지난해엔 2천5백t의 스티로폴 제품을 생산해 대우전자·금성사 등에 납품,43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매년 50% 가까운 성장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지난 3월말 부도를 맞아 공장이 압류돼 경매절차가 진행중이고 벌써 두달이상 임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대구에 있는 자회사인 동영정밀의 부도로 연쇄부도가 나면서 탄탄대로를 걷던 회사는 압류딱지가 붙고 임금·퇴직금도 받지 못할 지경에 처해진 것이다.
갑작스럽게 닥친 이같은 상황에 앞이 캄캄했지만 그대로 주저 앉을 수만 없던 사원들은 근로자대표인 천은봉 업무과장(33)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고 지난달 6일부터 『기필코 회사를 살려 놓자』는 굳은 약속과 함께 다시 일터에 나와 소매를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가 다 똑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생산직 사원 75명중 55명은 「마음은 이곳에 두지만 몸이 떠날 수 밖에 없는」 20명의 사정을 이해해야만 했다.
현재 비록 한달평균 생산량 2백∼2백20t이 1백50t으로 줄었지만 기업에선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부도를 맞은 회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력이 넘친다.
밀린 전기요금 등 아직도 풀어야할 문제는 많지만 다음달부터는 생산량이 예전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기 때문이다.
전상임씨(54·여·생산과)는 『우리회사 사원들은 모두가 한가족』이라며 『지금은 어렵지만 곧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밝게 웃는다.
천 과장은 『사원들이 모두 참고 열심히 일해주는 덕분에 다음날부터는 임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됐다』며 『새로운 사주가 나타날 때까지 생기는 이익금은 고생한 사원들의 몫으로 돌리겠다』고 말했다.<대구=홍권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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