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언 나가노 법무 기용됐던 속사정/유사시 「재무장」 위한 첨병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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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방위력 강화·헌법개정 노린 오자와 포석/문민기용 헌법 무시 현 정부 속셈노출
2차대전이 침략전쟁이 아니었다는 발언을 한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전 일본 법무상은 전형적인 군출신 무골이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2차대전에 참전한데다 전후에는 육상자위대 막료장까지 지낸 사람이다.
그는 자민당 시절 현 신생당 대표간사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가 좌장이었던 「오자와 조사회」의 유력 회원이었으며 일본의 방위력 강화를 주장해온 사람이다. 오자와 조사회는 일본의 국제적인 역할과 이를 위한 헌법개정논의가 주목적이었던 연구모임이다.
그런데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전 총리처럼 「개혁과 전쟁책임」에 뜻을 같이하는 하타 쓰토무(우전자) 총리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법무상으로 기용했을까.
더구나 일 헌법(66조)이 『총리 또는 그밖의 국무위원은 문민이 아니면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 신문(9일자)은 『그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기에 법무상으로 기용한 것 아닐까』라며 「방위력강화와 헌법개정 주장」이 바로 그를 법무상으로 기용한 이유라는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하타정권 출범전 연립여당이 정책통일을 위한 협의때 가장 난항을 겪었던 분야는 바로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대응방안이었다.
호소카와 정권 때부터 총리관저에서 비밀리에 이뤄지던 협의에서도 「유사시(일본의 미군 후방지원에 따른) 법적근거」가 최대 이슈였다.
일 내각 법제국(한국의 법제처)은 『한반도 유사시 현행법 테두리내에서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돼 있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이에따라 유사시 일본이 대응할 수 있는 법·제도의 정비가 연립여당으로서는 최대 과제였다.
연립여당이 합의한 기본정책이 『정부는 일본국 헌법하에서 긴급사태에 대비한다』로 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조항은 「현행법하에서」가 아니라 「현행 헌법하」라고 규정함으로써 신규입법과 법개정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나가노를 법무상으로 기용한 것은 안전보장이라는 관점에서 법·제도를 정비하자는 하타 내각의 의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같은 의도는 전쟁책임에 관한한 호소카와 전 총리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명언한 하타 총리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나가노의 법무상 기용은 하타 총리의 인사가 아니라 오자와 대표간사의 인사였던 것 같다. 오자와 대표간사는 평소 주장해오던(다른나라처럼 군대도 갖고 필요시 국제공헌을 위해 해외파병도 가능한) 「보통국가 일본」을 실현하기 위해 착착 포석을 해왔다.
현재의 보수적인 분위기나 일본인들의 속마음으로 볼때,또 오자와와 같은 인사가 국정을 좌우하는한 나가노 파동은 앞으로 반복될 것이다.
나가노가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고 사죄했지만 그의 표정에서 『말만 그렇지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석구 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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