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Blog] '한번 털어먹고 끝나는' 한국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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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휴가를 내 일본 도쿄를 다녀왔습니다. 도쿄 도심을 누비다 보니 혹 봉준호 감독의 촬영 현장을 마주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봉 감독은 요즘 ‘흔들리는 도쿄’라는 새 영화를 도쿄에서 찍고 있거든요 (도쿄를 주제로 한국·프랑스·일본 3국이 합작하는 3부작 옴니버스 영화 중 한 편입니다. 다른 두 편은 프랑스의 레오 카락스와 미셀 공드리가 각각 감독이고요).

 이 신작은 ‘유레루’에 오다기리 조의 형으로 나왔던 연기파 배우 가가와 데루유키가 주연이고, 국내에도 팬이 많은 아오이 유·다케나카 나오토도 나온답니다. 뭐, 완성돼서 개봉할 즈음에 인터뷰로 만날 기회도 있겠지만 촬영 현장을, 그것도 우연히 보는 맛은 아무래도 다르지요.

 암튼, 결과적으로 그런 우연은 없었습니다. 대신 신주쿠의 서점에서 뜻밖의 얼굴을 만났지요.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주인공으로 분한 욘사마였습니다. 정확히 말해, 배용준의 얼굴이 표지에 실린 ‘태왕사신기’의 화보집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번 주에야 첫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의 화보집이 벌써 일본 서점가에 깔려있더군요. 놀라웠습니다. 촬영 현장의 이모저모를 담은 스틸 사진과 극중 주요 인물의 관계도 같은 사전정보가 실려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화보집뿐 아니라 『태왕사신기 예습(豫習) 북(Book)』이란 책도 나란히 출간돼 있더군요. 일본어는 까막눈이나 다름없어 구체적인 내용은 전하지 못하겠습니다만, 드라마에 예습이라니, 대단합니다.

 반면 국내시장에서 대중문화상품, 특히 영화는 예습은 커녕 복습도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요즘 극장가에 신작영화가 걸려 있는 시간은 대개 한 달 남짓입니다. 이나마도 웬만큼 흥행이 된 경우라야지요. 예전에야 극장에서 못 보면 비디오로 본다고들 했지만, 요즘은 대여점이 아예 없는 동네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DVD 판매시장이 활성화된 것도 아니고요.

 한마디로, 국내에서 영화라는 상품의 유통기한은 극장상영기간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습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기획에서 개봉까지 대략 2, 3년씩 걸리는 걸 감안하면, 참으로 짧지요. 여름 한철 매미 신세보다 조금 낫다고나 할까요.

 본 영화의 처지가 이러니 다른 부가상품을 만들고 준비할 여력도 별로 없습니다. 지난해 영화 ‘괴물’이 별도의 소설·만화·모바일게임 등으로 전개되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준비된 일은 아니었습니다. 대작 콘텐트의 기획단계에서부터 ‘미디어 믹스’니 ‘원 소스 멀티 유즈’니 하는 전략을 검토하는 일본과는 다른 형편이지요.

 어찌 보면 희한합니다. 영화 한 편이 큰 성공을 거둘 때면, 인터넷에는 감상문과 패러디 같은 관객들의 자발적인 창작물이 봇물을 이루곤 하는데, 정작 영화를 만든 쪽에서는 그런 감동을 좀 더 오래, 좀 더 다양하게 소화하는 다른 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관객동원 신기록만 아니라 이런 방면의 기록을 세우는 영화 역시 나와줄 때를 기대해봅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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