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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앞날을 준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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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런 국내외적인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아베 총리는 지난달 27일 당정개편을 단행했다. 이번 당정 개편의 특징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외상을 당내 2인자인 간사장에 기용함으로써 아베-아소 당정 라인을 구축해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하려는 것이었다. 동시에 각료 경험이 풍부한 중진급 인사를 내각에 포진함으로써 ‘친구 내각’ ‘아마추어 내각’이라는 비판에서 탈피하려고 시도했다. 일본의 보수신문조차 ‘때 늦은 감이 있다’ ‘새 진용의 역량은 미지수’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볼 때 이번 인선이 일본 국민에게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개각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외교·국방 라인의 교체에 따른 한·일 관계와 대북 정책의 변화 가능성이다. 외상에 기용된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와 방위상으로 기용된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는 보수 우익성향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마치무라 신임 외상의 경우 2004년 외상으로 재임할 때 “일본에 군국주의를 찬미하는 교과서는 없다”는 망언을 했으며,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도 “여당의 과반수 붕괴를 좋아할 사람은 북한의 김정일 아니냐”는 일본판 북풍몰이를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새 외교 국방라인은 아소 전임 외상이 그랬듯이 주변국과 새로운 마찰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아베 정권은 개각이 끝나자마자 부정 수급 문제로 엔도 다케히코(遠藤武彦) 농수산상이 사임하는 등 국내적으로 어려운 정치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울 만한 대아시아 협조 외교를 긴장관계로 몰고 가는 것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게다가 11월 1일로 기한이 만료되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연장 문제는 아베 정권의 존속 여부를 판가름할 시험대로 남아 있다. 만약 법안 연장이 좌절되면 자위대의 철수가 불가피해지면서 아베 정권의 운명은 기로에 설 가능성이 크다. 11월 이후 아베는 국회 해산이나 내각 총사퇴를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할 것이며, 그 시기는 예산 편성이 어려워지는 내년 봄으로 예측되고 있다.

아베가 다가오는 선거에서 지지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납치 문제의 해결뿐이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아베는 대북 강경정책으로 물러날 것이다”는 시각과 “납치 문제를 풀 수 있는 정치가는 아베밖에 없다”는 시각이 혼재한다. 그러나 현재 북한이 북·미 관계 개선에 집중하고 있고, 아베 또한 대북 강경정책으로 그나마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북·일 관계의 전환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본이 한·일 관계와 대북정책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다가오는 선거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한·일 양국 공히 대통령 선거와 중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 적극적으로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이 시점에서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해 서두를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처럼 한·일 양국의 정치 변동기에 양국 정부의 소극적 대응은 결국 차후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부터 한·일 양국은 미래를 위해 전략적인 큰 그림을 그리면서 새로운 도약을 구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