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슬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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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붙잡힌 아버지를 찾으러 형제가 추위 속에 백리길을 걸었다. 카드빚에 몰린 가족들에 버림받은 또 한 형제는 양부모의 끔찍한 학대에 시달리다 이웃들에게 구출됐다. 이들에겐 악몽 같은 설날 아침이었다.

[안양 13.11세 초등생] 3일 굶고 30km 걸어 아버지 면회갔다 허탕

철 지난 가을 점퍼 속에 있는 대로 옷을 껴 입었다. 낡은 운동화 끈도 단단히 맸다. 서울은 영하 16.7도로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데, 경찰서에 있는 아버지를 보려면 갈 길이 멀다.

金모(13)군과 동생(11)은 설날인 22일 아침 8시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2동의 집을 나섰다. 형제는 이미 사흘째 밥을 굶은 상태였다.

찬바람을 맞으며 물어물어 북쪽으로 향했다. 서울 신림동 남부경찰서까지는 30km가 넘는 먼 길이었다. 걷다가 춥고 지치면 차라리 뛰었다. 경찰서 문을 열고 쭈뼛거리는 형제를 본 전중익(41)경위가 "어떻게 왔냐"고 묻자 형은 "아빠를 만나고 싶어서요"라고 했다. 이때가 오후 3시쯤. 집을 나선 지 일곱 시간 만이었다.

아버지 金모(60.무직)씨는 지난 15일 옷가지와 식료품 18만여원어치를 훔치다 붙잡혔다. 하지만 21일 저녁 金씨가 영등포구치소로 옮겨가는 바람에 형제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金씨는 예전에도 물건을 훔친 적이 있어 실형이 불가피하고, 어머니는 8년 전 이혼했다.

울음이 터질 듯한 두 아이를 보다 못한 전경위가 4천원을 쥐여 돌려보냈다. 다음날 전경위의 걱정스러운 부탁을 받고 金군의 연립주택을 찾은 교회 관계자는 깜짝 놀랐다. 수도계량기가 동파돼 물이 나오지 않았고 가스레인지도 먹통이었다.

집에 쌀이 10kg쯤 남아 있었지만 형제는 밥을 짓지 못했다. 그러나 金군 형제는 "4천원으로 차비를 하고 남아 모처럼 새우깡을 사 먹었다"며 좋아했다. 안양시 만안구청 관계자는 "돌볼 사람이 없어 당분간 아동보호소에 맡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부산 7살.2살 어린이] 카드빚에 몰린 친·양부모에 버림받고 학대당해

카드 빚에 쫓기던 20대 부부가 정부 보조금을 노리고 어린이 2명을 위탁 입양한 뒤 이들을 폭행해오다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27일 정부 보조금(매월 최대 53만원 지급)을 노리고 형제를 위탁 입양한 뒤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아동학대)로 崔모(29.공원.부산시 북구 구포동)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부인 嚴모(2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입양된 아이들의 친부모 역시 카드빚으로 최근 합의 이혼하고 매월 80만원의 놀이방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자 지난해 11월 부산가정위탁센터에 형제를 맡긴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崔씨 부부는 아이를 위탁 입양하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방송 보도를 본 뒤 지난해 12월 15일 일곱살과 두살인 朴모군 형제를 입양했다.

이들 부부는 입양 후 아이들이 목이 마르다며 새벽에 일어나면 "잠을 깨운다"며 마구 때리는 등 한 달여 동안 빗자루.샤워꼭지.먼지떨이 등으로 구타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설 명절 때는 아이들을 집안에 가둔 채 설을 쇠러 가는 바람에 형제가 이틀간 추위와 배고픔에 떨기도 했다는 것이다.

부산=김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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