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삶>월요그림회-생활의 활력소 화폭서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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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월요일 오전 성공회 서울교구 뒤뜰,잔잔히 불어오는 봄바람에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을 맞으며 이젤을 펼쳐놓은 10여명의 주부들이 열심히 붓끝을 놀리고 있었다.겉보기에는 평범한 주부들이었지만 진지하게 화폭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주부들의 모임인「월요그림회」.
매주 월요일이면 이들은 어김없이 관악산.서울대공원.경복궁등을 찾아 야외사생을 즐기며「자신과의 만남」시간을 갖는다.대부분이 40~50대 전업주부로,설거지.빨래.청소등에 매달리다보면 따로자기 시간을 내기 어려운 처지지만 이들은 월요일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부터 생활에 활기가 생기고 인생이 즐거워졌어요.솔직히 이대로 살림만 하다가 그냥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늘 마음이 편치않았거든요.하지만 이제는 삶에 자신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90년부터 이 모임에 참가해 왔다는 劉德姬씨(50)의 얘기다.
「월요그림회」의 회원은 모두 40여명.대부분 단지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 모인 순수 아마추어다.처음에는 그림을 그릴수 있다는 것이 좋아 나오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좀더 좋은 그림을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나 따로 개인지도를 받 는 열성파도 있다.수채화협회 공모전등 각종 그림공모전에서 입상하는 회원,나아가 개인전을 여는 회원까지 나오는등 열의들이 대단하다.
이들 월요그림회 회원들은 지난해 11월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첫 그룹전형식의「열린 그림전」을 열기도 했다.그러나 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여가를 즐기고 자신을 돌아보는 개인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그림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방안을 모색,3년전부터 무료로 벽화 그리기 작업을 해오고 있다.
삭막한 도시의 시멘트벽을 꽃과 나비와 새가 날아다니는 그림동산으로 가꾸는 작업으로 정신박약아 시설인 仁川의 예림원과 성남어린이집 놀이터 벽화는 월요그림회 회원의 땀과 정성이 어우러진작품이다.
『꼬박 2~3개월이 걸리는 대작인데다 벽높이가 16m나 돼 어려움이 많았지만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작업에 매달렸어요.삭막한 시멘트덩어리에 지나지않던 벽이 식물.곤충도감을 방불케할 정도로 훌륭한 벽화로 변신했을때 우리 모두는 감격에 겨워 감정을억누르기 힘들었지요.』 이 회의 총무를 맡고 있는 任丞燕씨의 말이다.앞으로도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겠다고 밝히는 이들의 얼굴에는 행복감에 젖은 중년여성의 생명미가 넘쳐 흘렀다.
〈李貞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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