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시대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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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 토박이 고희경(35.주부.강남구 청담동)씨는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봄이 오면 온 가족이 경기도 양평 주말농장으로 달려가 알콩달콩 텃밭을 일굴 생각에서다. 상쾌한 흙냄새에 취해 상추.열무.배추 씨를 뿌리고 밭을 일구다 보면 온몸이 땀과 흙에 뒤범벅된 '농부 가족'이 된다.

올해는 농사 재미에 푹 빠진 아들 승호(8)와 딸 주은(4)이를 위해 아예 5평짜리 텃밭 세곳의 팻말을 아이들 이름으로 달기로 했다. 텃밭 사용료는 5평 기준으로 연간 2만5천원씩 모두 7만5천원이다.

高씨는 "남편은 직장 스트레스를 훌훌 털 수 있어 좋고,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뛰놀 수 있어 좋고, 나는 신선한 야채를 식탁에 올릴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주5일 근무제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국적으로 주말 농장의 인기가 상한가다.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고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주말이면 가족 눈치 보며 스트레스를 안고 살았던 도시인들이 큰돈 들이지 않고도 넉넉해진 주말을 가족과 건전하게 보낼 수 있는 주말농장으로 몰리고 있다.

2000년부터 경기도 남양주시.양평군.광주시 등 팔당 상류지역 인근의 경치 좋은 11곳에 '하이 서울 친환경 유기농 주말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는 지난 16일 임대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연간 임대료는 1계좌 5평 기준 2만5천원으로 모두 5천계좌 2만5천평이다.

그러나 접수 열흘 만인 26일 현재 남양주시 봉배골 농장과 양평군 양수리 농장 등 여섯곳이 이미 마감됐다. 나머지 다섯곳도 조만간 동날 전망이다.

서울시 최종환 농정팀장은 "지난해에는 4월에야 겨우 분양을 마쳤는데 열기가 대단하다"며 "주5일 근무제가 눈앞에 다가온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서울시내 30여개 농장도 북새통이다. 서초구 세원마을 대원농장 김대원(51)사장은 "다음달부터 5천평 농지 전체를 3평씩 쪼개 7만원에 분양할 계획인데 단골만 1천명을 넘는다"고 귀띔했다.

다음달 중순 1만평 규모의 주말농장을 분양할 예정인 부산시는 임대 신청자가 많아 추첨으로 뽑을 정도다.

경기도는 올해 지난해보다 9곳 늘어난 1백30곳에서 주말농장을 운영키로 했다. 2년 전 1백72개에 그쳤던 일반 농민의 주말농장도 3백곳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농민들로서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수익이 적은 곡물을 재배하느니 평당 5만원 정도 받고 5백평만 빌려줘도 연간 2천만원의 소득은 거뜬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같은 주말농장 붐을 타고 도시인들의 소규모 농지 매입도 급증하고 있다.

농림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비농업인에게 3백3평 미만의 소규모 농지에 한해 주말.체험농장용으로 살 수 있도록 농지법을 바꾼 이래 같은해 9월까지 2천6백ha가 도시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전체 농지 매매 건수의 19%(4만3천건)가 주말농장용으로 팔린 것이다.

메트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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