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일본 '불법자금 불감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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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사회가 끝없는 불법 정치자금 쓰나미로 술렁거리고 있다.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제1당 자리를 민주당에 내준 뒤 퇴진 압력을 받아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2기 내각에서도 권력형 부정부패가 연일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조합이 국가재산을 부당하게 수령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에 휩싸였던 일본 엔도 다케히코(遠藤武彦) 농수산상이 2일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엔도 신임 농수산상은 자신이 이사장인 야마가타(山形)현 '오키타마(置腸)농업공제조합'이 폭풍우나 서리 피해를 보상해주는 농업공제금 115만 엔을 부정한 방법으로 과다 수령한 것에 책임을 지고 3일 오전 아베 총리에게 사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정권이 야당의 공세를 더욱 버티기 어려운 것은 2기 내각이 출범한 당일부터 일주일 사이에 10건이 넘는 돈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아베 자신의 정치헌금도 일부가 기재되지 않아 이를 스스로 밝혔다. 자민당의 중역 가운데 한 명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총무회장은 사무실을 무상으로 이용했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오키나와.북방영토 담당상은 정치자금 사용 날짜를 두루뭉수리로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무상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는 개인 사무실을 짓고도 미등기 상태로 사용했고, 역시 자민당 중역인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정조회장은 정치자금 일부를 부적절하게 처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경제산업성의 고위직인 정무관은 자택의 전기요금을 정당 사무실에서 내게 했고, 외무성 정무관은 똑같은 영수증을 여러 차례 중복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파티 입장권을 정치헌금으로 기록한 차관급 고위직도 있었다.

일본에도 여당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에 일주일 전 아베가 개각을 단행할 때 일본 사회는 그간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기대를 걸기도 했다. 일단 각 파벌에서 베테랑들을 대거 발탁하면서 기존에 검증되지 않은 지인들을 중용했던 '도모다치(친구)내각'이란 비난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의 지적처럼 '연명 정권'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다. 얼굴만 바꿨을 뿐 부패한 관행에 익숙한 정치인을 등용하면서 정치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변화의 기회를 놓치고 불법 정치자금 쓰나미를 자초한 아베가 딱해 보인다. 이는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일이 아닐 것이다.

김동호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