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각협력」 기틀 마련/김 대통령 방일­방중서 얻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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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생시대」 공감대로 경협 큰진전/북핵은 눈에 띄는 성과없어 후퇴
김영삼대통령은 2박3일간의 일본방문에 이은 4박5일간의 중국방문을 30일로 마친다.
한국 국가원수로서는 사상초유로 우리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장 인접한 양국을 순방했다는 것은 순방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한·일·중 동북아 3국의 정상들은 김 대통령을 매개로 하여 3각협력의 가능성을 타진했고 격의없는 현안 논의속에 미래지향적 관계 설정의 기틀을 마련했다.
세 정상은 우선 당장의 현안이 되고 있는 북한 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방식을 도출해 냈다.
김 대통령은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 총리와의 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한 핵개발에 공동대응키로 하는 한편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다원협력시대를 열었다.
김 대통령은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깊은 반성」이라는 사죄표명을 받아냈다. 양국은 한국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일본이 어느 수준의 반성을 할 것이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김 대통령은 『과거에 대한 사과는 일본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라는 대범한 자세를 보였고,일본도 나름대로 진지한 접근을 보였다.
그만큼 두나라간에는 「과거 콤플렉스」에서 어느정도 해방된 관계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경제문제는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로」라는 원칙하에 과거처럼 우리의 수입역조를 강조하기 보다는 오히려 양국간 무역확대를 통한 역조의 시정,건설시장 개방,부품산업의 대한투자확대 등을 촉구했다.
일본이 이같은 약속들을 얼마나 성실히 이행할지는 미지수지만 감정적 대응에서 벗어나 논리와 이해로 접근하는 상호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관계는 한차원 높은 단계로 접어들 수 있게 됐다.
김 대통령은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적교류와 3국 공동 한자·동양의학·환경연구 등의 추진을 제의했고 일·중 양국이 동의,역내국가간 이해와 교류·협력증진의 계기를 만들었다.
김 대통령은 장쩌민(강택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상생의 시대」를 강조,공감대를 확보했다.
김 대통령은 역내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절실함을 역설했고,이러한 기본인식 위에서 세계적 관심사이기도 한 북한 핵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한 중국의 노력을 요구했다.
김 대통령은 대북 영향력 행사 등을 요구했지만 강 주석은 92년 한중 수교이래 천명해온 「한반도 비핵화,대화를 통한 해결」 원칙을 고수하면서 유엔안보리의 제재에 앞선 온건한 조치를 주장했다.
강 주석은 그 논거로 북한이 실제로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데 아무튼 중국과 북한의 「특수관계」 등을 불가피한 현실로 수용한 김 대통령은 한발 후퇴,또 한차례의 막연한 게임을 시도하게 됐다.
이렇게 보면 북한 핵문제에 관한한 이렇다할 가시적 성과는 없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한중 양국 정상은 그러나 경제·통상 등의 분야에서는 예견한대로 상당한 합의를 이루었다.
양국 정상은 실질적 협력증진을 위해 이중과세 방지협정·문화협정을 체결했고 산업협력위를 설치,우선 자동차·항공기·전자교환기(TDX)·고화질 텔레비전을 합작 개발·생산·판매하고 이를 원자력발전·위성개발로까지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실제 상호보완적인 양국의 인력과 자원,기술과 자본,발전경험을 결합시킨다면 호혜적 관계증진은 충분히 기대되는 것이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북한의 대남도발을 반대한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는 설명도 이런 측면에서 일면 수긍이 간다.
일부 아쉬움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김 대통령의 이번 순방이 북한 핵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통한 한반도의 긴장완화,나아가 이 지역의 안정을 정착시키고 상호의 경제적 번영으로 연결된다면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북경=김현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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