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잘 나가는 포스코 … 막상 선두업체 되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이구택(사진) 포스코 회장이 포항제철 공채 1기로 입사한 게 1969년이다. 이 회장은 “2000년을 전후로 세계 철강업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며 “38년간의 직장생활 가운데 이전 30년의 경험이 무용지물로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공학한림원이 27일 서울 역삼동 기술센터에서 주최한 ‘최고경영자(CEO) 포럼’에 주제 발표자로 참석한 그는 이렇게 밝혔다. 이날의 주제는 ‘세계 철강업계에서의 메가 컴피티션(Mega-Competition·거대 경쟁)과 포스코의 미래전략’. 올 2분기 삼성전자를 제치고 국내 기업 중 영업이익 1위(1조2470억원)로 올라선 기업의 CEO지만, 이 회장은 자신의 세 가지 고민을 화두로 현 상황을 진단했다.

◆아르셀로 미탈의 인수합병(M&A)을 막아라=이 회장은 아르셀로 미탈의 M&A 공세에 대해 “현재로선 100% 완벽한 방어책은 없다”고 말했다. 가장 좋은 방어책은 기업의 시장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는 ‘당연한’ 답변도 빼놓지 않았다. “강연에 나오기 전 주가를 봤는데, 아르셀로 미탈의 시가총액이 800억 달러, 포스코가 500억 달러, 신일본제철이 470억 달러였다. 포스코를 먹으려면 프리미엄까지 내야하니까 650억 달러는 필요하다고 본다.” 이 정도의 거액을 지불하면서까지 포스코를 인수할지 여부는 순전히 아르셀로 미탈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현대중공업·동국제강과 전략적 지분 제휴를 했다. 그 결과 포스코의 외국인 지분은 올해 초 62%에서 최근엔 55%로 낮아졌다. 외국인 주주는 웃돈을 준다면 언제든지 주식을 팔아넘기는 펀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른 철강회사를 인수할 계획이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 회장은 “단순히 톤수를 늘리는 M&A는 의미가 없다”며 “아직까지 시너지를 일으킬 만한 매력적 인수 대상을 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연구개발(R&D), 등대가 없다=“과거엔 선두 업체가 진행 중인 연구과제를 가져와 작업시간을 단축하거나 효율을 높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막상 업계의 선두가 되고 보니 어느 방향으로 R&D를 끌고 갈지 정말 답답하다.” 이 회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창조 경영’을 끌어들인 배경을 이해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진정한 산학 협력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초일류 대학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15년 걸려 상용화에 성공한 친환경 파이넥스 공정을 포스코 R&D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들었다. 그는 “파이넥스를 포스코가 해외에 진출하면서 꺼내들 수 있는 전략적 무기로 사용하다 10년 뒤에는 기술을 팔아 로열티를 받을 계획”이라며 “질이 높지 않은 철광석 광산이 많은 북한에서도 파이넥스 공정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지방 현장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회장은 “지방대 출신이 포스코 공채에 응모할 경우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유인즉, 서울 명문대 출신을 뽑아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제철소에 배치했더니, 1년 안에 그만두는 비율이 상당하더라는 것이다. 현재 포스코는 해외 리크루트, 추천, 공개 채용으로 각각 3분의 1씩 신입사원을 뽑고 있다. 그는 “현장을 지키는 우직한 젊은 인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심재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