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밑그림 모호한 '용산 재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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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용산 철도 정비창 44만2000㎡(약 13만4000평)의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주변의 부동산 값이 들썩이는 등 용산역 주변 개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철도 정비창 부지뿐 아니라 이어진 한강변 서부이촌동 지역까지 함께 전면 재개발을 추진하고, 서울시가 이곳에 최고 150층 빌딩의 건축까지 허용할 것이란 내용이다.

용산은 도심에 가깝고 한강에 이어지는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어 이미 1980년대부터 서울의 부도심으로 삼기로 결정돼 있었다. 그러나 철로가 갈라놓은 도시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노후화된 채 지금까지 비효율적으로 이용돼 왔다.

이제 정비창 부지 개발과 함께 철로 위를 덮어 한강로와 원효로 쪽의 도시 공간을 이어주고 더불어 인근의 용산 미군기지 이전 부지에 공원이 조성되면 용산은 공원과 업무지구, 한강이 연계된 이상적인 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될 전망이다. 따라서 해당 지역의 재개발은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게 아니다. 계획이 초고층 빌딩 건설, 한강변 명품 도시공간 등 주로 겉모양 좋게 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또 사업주체인 철도공사가 장기적인 도시발전보다 지나치게 수익 창출에 매달린 나머지 과밀한 개발이 초래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서부이촌동까지 포함해 개발하는 조건으로 608%의 평균 용적률을 허용했다. 서울 도심 평균 용적률이 200%가 채 못 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밀도다. 철도공사도 사업체인 만큼 이익 창출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최적 입지의 도심 개발 가능지인 용산 지역 개발을 공기업의 수익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현재 사업이 진행 중인 프랑스 파리 13구역의 '파리 리브 고쉬 사업'은 철도 부지 위를 덮어 인공부지로 만들고 그 주변지역을 재개발하는 것으로 사업 내용이 용산 철도정비창 사업과 닮은 꼴이다. 그러나 사업추진 체계는 다르다. 프랑스 국영철도(SNCF)와 파리시, 그리고 중앙정부가 공동으로 파리개발공사를 설립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심 개발은 그만큼 공공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은 도심에서 2㎞ 거리에 센 강을 낀 좋은 입지이지만 철로를 따라 창고.공장 등이 강과 해당 지역을 양분하면서 슬럼화됐던 지역이다. 그러던 것을 오스테를리츠 철도역 일대 철로 위를 폭 100m, 길이 3㎞로 덮어 약 26만㎡(7만8000평)의 인공부지를 확보했다. 총 재개발 면적은 약 200만㎡(60만 평)다.

리브 고쉬 사업의 기본 목표는 '24-7'이다. 즉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내내 살아 움직이는 도시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재개발이 끝나면 상주인구 2만 명에 6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사무실과 공공기관.공원.도서관.대학 등이 다양하게 계획됐다. 미테랑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평균 6~8층의 층고로 적절한 밀도를 유지하고 건물의 색채와 형태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용산 개발 계획에는 이런 알맹이가 빠져 있다. 아직까지는 초고층 빌딩, 한강변 경관 개선 등 피상적인 내용과 업무공간 29%, 공공공간 40%, 상업.업무 30% 등 대략적인 배분 내용만 마련돼 있다. 정작 중요한 것들, 예를 들어 개발사업의 기본목표가 무엇인지, 서울 도심과 기능 배분을 어떻게 할지, 개발사업을 통해 어느 정도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지 등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용산 철도부지 재개발이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높이는 데 보탬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겉모양보다는 속 내용이,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좀 더 철저하게 구상돼야 할 것이다.

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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