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철군은 세계적 재앙 부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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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26면

캔자스시티 AP=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한국전·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베트남전에 비유한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22일 미국 해외참전용사회(VFW) 총회에 참석해 이례적으로 45분간에 걸친 역사 강의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라크 철군은 베트남처럼 엄청난 인명피해를 초래할 것이라며 ‘철군 불가’ 입장을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그는 이어 한국전이나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압도적으로 승리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이 성공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처럼 이라크에서도 승리를 확실히 거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우 미국적이고 단순한 역사 해석이다. 미국 내 언론은 물론 일본 언론과 베트남 정부까지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국내 언론에서는 비중있게 취급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보수파, 특히 부시 대통령의 역사관과 전쟁관을 분명히 보여주기에 골자를 소개한다.

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총사령관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섰다. 전시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적들이 2001년 9월 11일 전쟁을 걸어왔다. 이번 전쟁은 문명의 충돌이라 불린다. 정말로 문명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수천 명의 미국인을 살해하고, 앞으로 더 큰 규모의 테러를 계획하고 있는 야만의 이데올로기와 싸우고 있다. 총사령관으로서 승리를 위해 싸울 것을 다짐한다.

왜 중동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싸워 승리하는 것이 미국과 인류의 안정을 위해 필
요한지를 역사적인 시각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화창한 어느 아침, 수천 명의 미국인이 기습을 받아 숨졌다. 우리를 공격한 적은 자유를 경멸하는 집단이었다. 그들은 무고한 미국인을 학살하고자 자살 공격을 마다하지 않았다. 내가 얘기하는 그들은 알카에다가 아니다. 1940년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이다.

미국은 결국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후 두 차례(한국전·베트남전) 더 동아시아에서 전쟁을 했다. 낙관론자들마저도 전쟁 당시 일본이나 한국이 오늘과 같은 자유민주국가로 성장하리라 예측하지 못했다. 오늘날 이들의 발전은 미국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거 동아시아에서의 전쟁이 오늘날 중동에서의 전쟁과 같을 수는 없다. 핵심적인 공통점의 하나는 이데올로기 전쟁이라는 점이다. 일본 군국주의자나 북한·베트남의 공산주의자나 자신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타인에게 강요하고자 했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이들과 맞서 싸웠다. 시간과 장소는 달라졌지만 중동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역시 자유를 말살하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펼치는 데 방해가 되는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 우리의 적들은 위험하다. 그들은 확신범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굴복시킬 것이다.

아직은 이데올로기 전쟁의 초기 단계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전쟁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를 역사적 경험으로 알고 있다. 자유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미국의 확고한 전략이 오늘날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한국)의 성공을 도왔다. 일본을 굴복시키고 자유국가로 다시 태어나도록 도운 미국의 신념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전쟁에서 치른 미국의 희생 덕분에 오늘날 이들 국가는 번영하고 있으며, 미국을 공격하는 대신 미국과 공존공영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만 해도 일본의 민주화와 발전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많았다. 일본의 항복 직후 미국 내에서는 일본의 경제 재건과 민주화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일본인은 천성적으로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을 지낸 조셉 그루는 “일본에서 민주주의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맥아더 장군은 회고록에서 “일본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려는 내 생각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일본 여성은 남편에게 순종적인 전통 때문에 정치적인 독립인격체라 할 수 없다고 한다”고 기록했다. 지금 일본의 국방장관은 여성이다. 여성 의원은 수도 없이 많다.

일본의 종교인 신토(神道) 때문에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많았다. 신토는 매우 광적이고 천황제에 뿌리박고 있다는 이유였다. 리처드 러셀 상원의원 같은 사람은 “천황을 재판에 회부하지 않을 경우 이후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두 맞지 않았다. 천황은 건재하고 있으며,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로 번성해 미국의 최대 우방이 되었다. 미국과 일본의 동맹은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초석이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당시에도 반대와 비판이 많았다. 한국전쟁은 미국에 도움이 안 되기에 파병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 대통령은 사방에서 공격을 받았다. 좌파 측에서는 ‘남한이 더 호전적이며 전쟁을 도발했다’고 주장했다. 우파 쪽에서는 ‘한국전은 지상전이라 참전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전쟁 내내 애매한 자세였다. 참전군이 미국 정부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불만도 높았다. 언론들 역시 참전을 비난했다. ‘미국인들은 왜 한국전쟁의 95%를 미국이 맡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전쟁은 시종일관 실수의 연속’이라는 등등.

미국의 참전과 희생이 없었다면 수천만 남한 국민들은 북한의 잔인하고 억압적인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굳은 의지 덕분에 남한은 번영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오늘날 미국의 동맹국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같이 싸우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는 정반대다. 복잡한 주제지만,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미군이 철수함으로써 수백만 인명이 살상당하는 비극이 이어졌다. 미군이 떠난 이후 미국과 협력했던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구금되거나 실종됐다. 수십만 명이 삶을 찾아 바다로 떠나는 보트 피플 행렬이 이어졌다. 이웃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루주가 수십만 명을 학살했다.

이라크에서 철군할 경우 테러리스트들은 승리를 외칠 것이다. 더 많은 테러리스트가 탄생할 것이다. 9·11에서 확인되었듯 테러리스트 천국이 생길 경우 미국의 안전은 위협받게 된다. 이라크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장이다. 이라크에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철군할 경우, 베트남과 달리 적들은 미국 본토까지 따라올 것이다.

우리는 미국 본토에서 적들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해외에서 근절해야 한다.

이라크에서 미군은 승기를 잡았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한다. 나는 우리의 군대가 승리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지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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